[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⑥ 변중석 여사와의 가연
동짓날에 선을 봤는데 다음 해 정월 초 여드렛 날로 결혼식 날 잡은 '초고속 결혼' 정 회장과 송전소학교 동창인 오빠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며 신부 어머니 설득해 결혼식에 참석한 인연으로 변 여사는 '할머니'를 친정 어머니처럼 가깝게 대해줘 정회장 주변 여자문제가 터지면 할머니가 나서 "큰 일 하다 보면 사연 있어"위로
정 회장은 1938년 1월에 변중석 여사와 결혼했다. 할머니는 정 회장과 함께 강원도 통천의 시골집까지 직접 가서 결혼식에 참석 했다고 했다.
종업원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주인아주머니가 경성에서 통천까지 종일 기차와 버스를 타고, 산길을 걸어갔다는 사실은 할머니가 정 회장을 특별한 존재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할머니는 그날 눈이 너무 많이 왔다고 기억했다. "통천역에서 내려 30리 길을 걸어갔어.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주변이 온통 하얀 눈밭이었지. 30리 길이면 그냥 걸어도 먼 길인데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었으니 오죽 힘들었겠냐."
당시 할머니의 나이가 마흔네 살이었다. 이 말 할 때의 표정이 정말 힘들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그 고생하면서 종업원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게 솔직히 이해되지 않았다. 나라면 과연 그렇게 했을까?
할머니는 결혼식 장면도 또렷이 기억했다. "결혼식을 하는데 거기에 꿩이 얼마나 많던지 하얀 눈밭을 막 날아다녀. 마치 참새처럼 날아다니더라니까. 색시를 처음 봤는데 참 착하고 순하게 보였어."
할머니는 정 회장의 아버지는 말이 없고 점잖은 양반인데 어머니는 키도 크고 인물이 훤해 정 회장이 어머니를 많이 닮은 것 같았다고 했다.
정 회장은 그 전해인 1937년 겨울에 아버지가 선을 보러 오라고 했다며 시골에 다녀왔다. 변 여사 친정과 같은 마을에 살았던 정 회장 숙부가 다리를 놓았다고 했다. 신부 집안에서는 처음에 반대했는데 정 회장과 송전소학교 동창인 오빠가 믿을 만한 사람 이라며 어머니를 설득해서 결혼하게 됐다고 한다.
"이 양반이 선을 보고 오더니 엄청나게 들떠 있어. 안 하던 실수도 하고. 그러더니 결혼하겠대. 동짓날에 선을 봤는데 다음 해 정월 초여드렛날로 결혼식 날을 잡았다니 깜짝 놀랐어. 그런데 결혼식 때 신부를 보니까 첫눈에 마나님한테 홀딱 반했구나 싶었지."
아버지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다. "결혼식 전에 정 회장이 가게에서 나를 보더니 대뜸 '너 연극 대본 하나 쓰라'고 하는 거야. 갑자기 뭔 소린가 하고 눈만 끔뻑끔뻑 하고 있으니까 '양정고보 다니니까 많이 알 거 아니냐. 결혼식 피로연에 연극 한 편 올리고 싶으니까 네가 대본 하나 써줘' 이러는 거야."
양정고보 다니는 엘리트니까 연극 대본 정도는 단번에 쓱쓱 쓸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연극 대본을 써본 적이 없던 아버지는 밤 새 끙끙대다가 겨우 써 주었다.
"나중에 들어보니까 그 대본을 자기가 마저 완성해서 피로연에서 기어코 연극을 했다는 거야. 신랑이 직접 대본을 써서 피로연에서 연극을 한다는 게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생각이겠어? 뭐든지 배우는 데 열심이었고, 실행력도 대단한 분이셨지."
할머니가 결혼식에 참석한 인연으로 변 여사는 할머니를 친정 어머니처럼 대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변 여사를 '마나님'이라고 불렀다. "정 회장이 다 좋은데 여자 문제가 복잡했잖아. 호걸은 여자를 좋아한다더니 이 양반이 딱 그거야. 열여덟 살 어린 나이에 시집 온 마나님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어. 마나님 심성이 워낙 고와서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 끙끙 앓고 있다가 나를 만나면 속마음을 털어놓는 거야. 내가 친정엄마 같다나. 눈물을 뚝뚝 흘리는 데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니. '영웅호걸이 큰일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연이 있는 거겠지'라며 등을 토닥거려 줬어. '나는 서른네 살에 청상과부가 됐는데 그래도 나보다는 나은 거 아니냐' 하고 말하니 그제야 눈물을 훔치고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속상한 일을 나한테 털어놓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고 그랬어."<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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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