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9:30 (토)
[김성희의 역사갈피] 하와이의 망국 역사
[김성희의 역사갈피] 하와이의 망국 역사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01.3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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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9대 주미 전권공사 이범진, 당시 강소국으로 하와이와 밸기에 꼽아 눈길
1790년대 미국인이 상륙했을 때 까지 50만명이 거주하는 독립적인 ' 농어업 왕국'
선교사 등이 진출하고 미국인 무역상이 사탕수수 농장 조성하면서 미국 입김 커져
원주민들이 민족주의자인 여왕을 추대했지만 군사력 앞세운 '미국의 침탈'에 붕괴
1898년 미 의회가 합병 조약을 승인함으로써 하와이는 미국에 편입되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조선의 제9대 주미전권공사를 지낸 이범진이 남긴 『미사일록』을 보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대목을 만났다. 미국의 선진문물에 감탄하면서 "나라의 강약과 흥망은 사람에 달려 있지 나라의 크고 작음에 달려 있는 게 아니다"란 구절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강소국'의 예로 하와이와 벨기에를 들었다. 그렇다. 이범진이 주미 사절로 갔던 때가 1896년이었으니 당시만 해도 하와이는 독립왕국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태평양의 진주라 해서 천혜의 관광지로 꼽히는 하와이는 기원전 1500년경부터 폴리네시아인이 정착해서 1790년대 미국인들이 상륙했을 때는 50만 명 정도가 거주하는 농어업사회였다. 1810년 카메하메하 1세가 다른 추장들을 누르고 지배권을 확립했으며 그의 대미 친선책에 힘입어 1830년대 보스턴의 무역상인 윌리엄 후퍼가 하와이 제도에 처음으로 사탕수수 농장을 조성했다.

미국의 상인, 선교사, 농장주들이 밀려들면서 하와이 원주민 사회는 전염병과 술, 강제 선교 등에 노출되며 전통적 성격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이어 1840년대에는 미국인 주드(G. P. Judd)가 입헌군주정 수립에 동의한 카메하메하 3세 치하에서 하와이 수상이 되어 10년 넘게 하와이를 통치했다. 1887년엔 태평양상의 해군기지가 필요했던 미국이 하와이 진주만에 해군기지 구축을 허용하는 조약을 맺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미 의회가 1890년 미국 사탕수수 농장주를 보호하는 무관세협정을 폐기하자 하와이 경제는 위기에 빠졌으며 미국인 농장주들은 하와이를 미국의 일부로 만들어 관세를 면제받는 것만이 하와이가 살길이라 결론짓고 1893년 미국에 보호를 요청하면서 반란을 시도했다. 이에 앞서 1891년 하와이 원주민들은 강력한 민족주의자인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을 추대한 바 있지만 군사력을 앞세운 미국의 침탈을 막기에는 무력했다.

하와이 주재 미국 공사가 반란자들을 돕기 위해 호놀룰루 항에 정박 중이던 전함에서 해병대 상륙을 명령하자 여왕은 권좌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미국인들이 장악한 임시 정부는 워싱턴에 대표를 파견해 합병 조약을 논의했으며 지리한 논쟁을 거쳐 1898년 미 의회가 합병 조약을 승인함으로써 하와이는 미국에 편입되었다.

이건 미국 콜럼비아대학교의 사학과 교수 앨런 브링클리가 쓴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2』(휴머니스트)에 실린 내용이다. 19세기 말 외세의 위협에 맞설 구명줄로 미국에 의지하려던 조선의 외교관 이범진의 눈엔 하와이가 부러웠겠지만 그로부터 불과 몇 년 뒤에 하와이 왕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조약이니 민의니 해서 어떤 명분을 붙여도 이는 침략이요, 병탄에 다름 아니다. 1910년 조선을 '합병'하기까지 일제 또한 을사늑약이며 통감부 설치 등 나름 '법적' 절차를 밟았으니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美國)'이라 상찬할 것만도 아니고, 일제만 두고 세계의 악이라 규탄할 것도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을 비롯해 동북아 정세가 하수상하니 문득 독립 자강의 길은 무엇인지 생각이 많아져서 해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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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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