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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100년 전의 이혼 열풍
[김성희의 역사갈피]100년 전의 이혼 열풍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01.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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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청년 엘리트층선 붐 이뤄…'이혼동맹구락부'까지 생겨 서로 고무
부모가 짝지워 줬거나 부인이 무식,후손에게 불행 대물림 불가 이유로
일제강점기 조선의 청년 엘리트들 사이에 이혼 바람이 불었었다. 사진(1925년 혼례 행렬 모습)=서울역사아카이브/이코노텔링그래픽팀.

국어학자인 고 일석 이희승 선생의 수필집 『벙어리 냉가슴』(오트·복간 예정)을 읽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만났다. 선생의 수필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딸각발이」가 아니라 본인의 결혼생활을 회고하는 「부부생활 50년기」에 눈길이 갔다.

열세 살에 결혼해서는 2년여가 지난 뒤에야 아내와 처음 대화다운 대화를 나눴다는 이야기는 그 시절은 그랬으려니 싶었지만 정작 흥미를 자아냈던 것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청년 엘리트들 사이에 불었던 이혼 바람에 관한 구절이었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만나는 3·1운동하면 '민족' '독립' 등 거대 담론이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당대의 사회적 파장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이희승 선생의 글에 따르면 삼일운동 직후 단발랑(머리를 짧게 자른 젊은 여자)이 최초로 거리에 등장하는 등 "도덕이니 인륜이니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뒤집히는 동시에, 성도덕이 따라서 여지없이 바뀌기 시작하였다"니 말이다.

이런 사회풍조에 더해 조혼(早婚)에 대한 반발 내지 부작용이 커지면서 당시 이 땅에 이혼이 대유행했던 모양이다. 심지어 '이혼동맹구락부'까지 생겨나 당시 20대였던 선생의 동년배 친구들 중 십중팔구는 거기 휩쓸려 이혼을 고무하고 실천했단다.

이들이 "용맹 과감하게 이혼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명분은 크게 세 가지였으니 부모들이 독단으로 짝을 지어줬으니 자기들에게는 그걸 유지할 책임이 없다, 아내는 대개 나이가 많고 무식하니 이상이 맞지 않는 결혼생활을 평생 계속할 수 없다, 사회개혁의 선각자가 되어 후손들에게 이런 불행을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워낙 흥미로워 일제강점기의 혼인풍속을 다룬 다른 자료를 뒤져보니 1920년대에 '신식 혼인'이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른 피로연이나 신혼여행이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사실도 아울러 알게 됐다.

당초 '신식 혼인'이라 함은 '예배당 혼인'을 가리켰는데 이 무렵 비기독교인이 교회식으로 혼례를 올리는 것이 부당하다고 인식되면서, 최남선·문일평 등 당대 지식인 33인이 결성한 계명구락부가 앞장선 예식 절차를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 박승빈이 창안한 것으로 알려진 '계명구락부식 혼인'의 절차는 친척 및 내빈 착석, 개식사, 신랑 신부 입장에서 예물 증정과 내빈 축사에 이어 친척 상견례로 마무리되는 것이 오늘날의 예식과 흡사했다.

여기에 '신도(神道)식 결혼'에서 친지들에게 혼인을 인증받는 절차인 일본의 피로연 풍속이 우리 전통혼례에서 예식 후 거행되던 혼인 잔치를 대신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신혼여행 또한 극소수 인사들에 의해 선보였고.

세상은 변한다. 그러니 결혼이나 이혼의 방식도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21세기 노년의 남성을 위협하는 이른바 '황혼이혼' '졸혼'이 어째 1920년대 활동했다는 '이혼동맹구락부'에 따른 일종의 '업보'라는 생각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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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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