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1:40 (토)
[김성희의 역사갈피] 미국은 '자동차 안전띠' 언제 강제했나
[김성희의 역사갈피] 미국은 '자동차 안전띠' 언제 강제했나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12.1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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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더, 다른 자동차와의 첫 번째 충돌 보다 자신이 몰던 차에 더 타격 처음 입증
1966년 교통부 신설 … 안전띠와 충격 흡수 핸들,비산 방지 전면 유리창 등 강제
시장이 늘 만능은 아니지만 규제에는'비용' 따라…시장과 규제 사이서 고민 필요
미국 소비자 운동의 개척자인 랠프 네이더는 1965년 자동차 결함을 고발한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Unsafe at Any Speed』란 책을 내면서 명성을 얻었다. 사진=랠프 네이더 페이스북/이코노텔링그래픽팀.

랠프 네이더. 미국의 소비자 운동을 개척하며 '네이더리즘'이란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미국 소비자 운동의 개척자이자 거목이다. 지금은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진 듯하지만 다섯 차례나 대통령선거에 도전했으니 그 영향력을 짐작할 만하다.

네이더는 1965년 자동차 결함을 고발한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Unsafe at Any Speed』란 책을 내면서 명성을 얻었다. 매년 5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자동차 사고로 숨지던 때 였다. 네이더는 자동차 사고는 다른 자동차와의 첫 번째 충돌이 아니라 희생자 자신이 몰던 차 내부와의 '두 번째 충돌'로 더 큰 타격을 입는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고발했다. 자동차회사들이 운전자의 안전에 소홀한 제품을 만든다는 의미였다.

그의 고발은 단순히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시비가 아니라 시장 제일주의에 대한 의미있는 도전이었다. 소비자는 보다 안전한 자동차를 선호하고, 자동차회사는 시장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더욱 안전한 자동차를 만든다는 것이 이상적인 시장이 작동하는 경제 모델이다. 하지만 대다수 미국인에게는 필수품이 되어버린 미국 '시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시장을 지배하는 포드, GM, 크라이슬러란 3대 자동차회사는 안전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아도 제품이 팔렸고, 소비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네이더는 이 지점을 파고 들었고 미국 정부는 이를 따랐다. 1966년 교통부를 신설하고 안전띠와 충격흡수 핸들, 비산 방지 전면 유리창 등 안전장치 도입을 속속 강제했다. 물론 이에 대해 자동차회사들은 가격 상승 가능성과 불분명한 편익을 들어 입법 반대 로비를 펴기도 하고 제너럴모터스는 사립 탐정을 고용해 네이더의 사생활을 파헤치려다가 되려 네이더에게 4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자동차 안전규제의 효과는 놀라웠다. 미국에서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에 정점을 찍은 후 50년간 미국 인구가 계속 늘었음에도 연간 자동차 사고 사망자 수는 계속 줄어들었다. 이것이 오로지 네이더의 활약 덕분은 아니겠지만 그가 없었다면 자동차의 안전성은 지금보다 훨씬 늦게 확보되었을 것이다.

이는 경제전문 저널리스트가 미국 경제사에서 경제학자들의 역할을 아주 흥미롭게 그려낸 『경제학자의 시대』(빈야민 애펠바움 지음, 부키)에 나오는 내용이다. 공장이나 공사장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사고들, 그 책임을 경영자에게 묻는 것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네이더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시장이 늘 최선이거나 만능은 아니지만 규제에는 '비용'이 따른다. 불완전한 시장과 바람직하지 않은 규제 사이에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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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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