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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아마추어'란 단어의 정치적 의미는?
[김성희의 역사갈피] '아마추어'란 단어의 정치적 의미는?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1.11.1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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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美역사가는 미국식 대의제 정부서 진정한 리더는 '아마추어' 라고 주장
통치하기 위해 태어난게 아니라 지역사회서 일시적으로 뽑힌 지도자라는 뜻
미국 역사가 다니엘 부어스틴은 『미국사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범양사출판부)에서 색다른 주장을 폈다. 미국식 대의제 정부에서 진정한 지도자란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 의미에서의 ‘아마추어’라는 것이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미국 역사가 다니엘 부어스틴은 『미국사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범양사출판부)에서 색다른 주장을 폈다. 미국식 대의제 정부에서 진정한 지도자란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 의미에서의 '아마추어'라는 것이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대선을 앞두고 갈수록 뜨거워지는 정치판에선 얼마 전 "음주운전 경력자보다 아마추어가 위험하다"는 어느 후보의 말이 한때 화제가 되었다. 이와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소개하련다.

미국 역사가 다니엘 부어스틴은 『미국사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범양사출판부)에서 색다른 주장을 폈다. 미국식 대의제 정부에서 진정한 지도자란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 의미에서의 '아마추어'라는 것이다.('아마추어(amateur)'란 라틴어의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의 amator에서 왔단다)

이는 귀족이나 독재자처럼 통치하기 위해 태어난 이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일시적으로 뽑힌, 그러니까 얼마 안 있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사람들에 의해 영도되는 체제라는 뜻이다.

부어스틴에 따르면 이런 아마추어를 위협하는 세력이 전문가와 관료들인데, 영어에서 '전문직'이란 말은 당초 성직자들의 서약을 의미했다. 그 후 몇 세기 사이에 법률가와 의사, 이어 군인이 전문직에 추가되었고 1840년경에 과학자나 예술가가 전문직으로 인정되었고 이제는 교육, 언론, 경영, 홍보 등 전문직의 종류는 끝이 없어 가히 '모든 사람의 전문화'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만큼 전문직의 허위성도 큰 문제로 등장했으니 이와 관련 부어스틴은 비전문적 국회의원의 가치에 관한 일화를 소개한다. 18세기 영국 토리당의 윌리엄 블랙스톤 경은 국회의원은 월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는 일화다. 블랙스톤 경은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수당 없이 근무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신사들이며 쉽게 부패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근거에서 이 같은 주장을 폈다는 설명이다.

요즘 우리 정치판을 보면 약간 의심스러운 대목이긴 한데 부어스틴은 국민 대표로 아무리 여러 번 뽑혔어도 전문적인 정치가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더욱더 복잡해지고 비대해질수록 시민의 관점, 즉 비전문가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문가의 허위성에 물들지 않고, 관료의 충성심과 근면성을 갖추고도 관료의 소심함으로 마비되지 않은 지도자를 배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것이 부어스틴의 결론이다.

설사 그렇다 해도 '아마추어' 정치가가 과연 언제까지 사명감과 시민적 입장을 고수할지는 의문이다. 법률은 법률가를 위해 존재하고, 의학은 의사들의 편의와 유지를 위해 존재하다는 등 '전문가의 유혹'에 관한 경계와 비판이 나온 지는 오래됐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이미 1820년 어느 영국인이 "전문직 가운데 군인은 너무 흔해 빠지고, 목사는 너무 게으르고, 의사는 너무 돈만 밝히고, 법률가는 너무나 강해지고 있다"고 갈파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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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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