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톨릭에서 금요일 육식을 금하면서 동물성 지방인 '버터' 금지령
돈 받고 면죄부 주자, 루터 " 금지 식품 먹을 권리까지 판다 "며 맹비난
소, 양, 염소 등의 젖에서 얻어낸 지방질을 굳혀 만드는 고소한 버터는 거의 모든 서양요리에 들어간다. 그래서 서양요리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버터 맛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 버터가 처음부터 유럽인들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유목문화에서 비롯된 버터는 차츰 농경문화에 침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로마시대 역사가 플리니우스는 버터를 두고 '야만인의 음식'이라 했을 정도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를 비롯한 지중해 문명에서는 버터보다 올리브 기름이 널리 쓰였으며 북쪽의 버터, 남쪽의 올리브 기름이란 음식문화는 유럽에서 오랫동안 자리 잡았다.
이후 북유럽 세력이 남으로 밀고 내려온 로마제국 멸망 이후 버터 사용이 확산되었는데 14세기부터는 버터 사용 금지 조항이 등장할 만큼 보편화되었다. 중세 유럽이 지배한 로마가톨릭에서는 사순절과 금요일에 육식을 금하고 생선을 먹었는데 이와 관련해 동물성 지방인 버터를 금지해야 한다는 규정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그러자 교황청에게서 금식 기간에도 버터를 먹을 수 있는 일종의 '면죄부'를 받아내는 것이 지도자의 치적이 되곤 했단다. 일례로 1491년 브르타뉴 공작령이 여공작 안의 결혼으로 프랑스 영토로 편입되자 안은 브르타뉴 모든 사람들의 버터 사용을 허가한다는 면죄부를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1495년에는 독일, 헝가리, 보헤미아 프랑스의 여러 지역도 같은 면죄부를 받았다.
한데 여느 '면죄부'가 그랬듯이 '버터 면죄부'는 공짜가 아니었다. 교황청은 대신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탓에 이는 상당한 불만의 표적이 되어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어올린 마르틴 루터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먹고 마시고 옷 입는 방식에 대해 관여하시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루터는 1520년 발표한 '독일의 그리스도교 신도들에게 보내는 연설'에서 "자신들은 신발에도 바르지 않을 저급한 기름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강요한다. 그러면서 금식 기간에 금지된 식품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팔고 있다…그들은 버터를 먹는 일이 거짓말을 하거나 신을 모독하거나 부정을 탐하는 것보다 더 나쁜 죄악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통렬히 비난했다. 사태가 이리 됐으니 16세기에 가톨릭교회에서 이탈한 나라와 버터를 주로 사용하는 나라가 거의 일치한다는 통찰이 나온 것도 이해가 간다.
이는 '혀끝의 인문학'을 자처한 이색 통섭형 역사서 『18세기의 맛』(안대회·이용철·정병설 외 지음, 문학동네)에 실렸다. 나라를 구하느니, 삶의 의미를 찾느니 하는 거대 담론의 이면을 들춰보면 결국은 '먹고사니즘'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작은 증거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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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