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6:10 (토)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3) 마부제박사⑩戰禍속에 꽃피운 문화예술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3) 마부제박사⑩戰禍속에 꽃피운 문화예술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10.20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이퍼인플레 시대에 삶은 팍팍해졌지만 '독일의 창의력'은 왕성해져
포토 몽타쥬 기법 등 전통을 부정하는 예술 운동인 다다이즘 중심 역할
그 때 실험 건축의 대명사로 꼽히는 바우하우스( Bauhaus )도 등장해

1년 만에 물가가 12억5000만 배 뛰던 시절. 식사 중에도 밥값이 오르던 시절. 빵 한 덩어리 값에 1000억 대 단위가 붙어 있던 시절. 그 시절에도 영화가 만들어졌을까? 그렇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만화경(萬華鏡)이었을까? 맞다. <도박사, 마부제 박사>는 그런 영화들 중에서도 대표적이다.

-----------------------------------------------------------------------------------------------------------------

영화 <도박사, 마부제 박사(Dr. Mabuse, Der Spieler)>가 독일 관객에 첫 선을 보인 것은 1922년 4월 27일 목요일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날 영화의 개봉과 관련된 기록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니 개봉 첫 날 관객 수나 관객 반응 등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무렵 독일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는 알 수 있다. 연합국 측, 특히 프랑스에 대한 배상금 지급을 위해 마구 돈을 찍어내 물가가 터무니없이 올라갔고, 여러 가지 이유에서 배상금에 대한 독일 민중의 반발이 커져만 가던 시절이었다. 정치적으로도 극도의 혼란을 겪었다. 영화 개봉 두 달 뒤인 6월 24일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외무장관 발터 라테나우(Walther Rathenau)에 대한 테러를 다시 한 번 상기해 보라.

1919년 설립된 바이하우스. 1920년대 독창적인 독일 건축계의 상징이다.
1919년 설립된 바우하우스. 1920년대 독창적인 독일 건축계의 상징이다.

문화나 예술이라는 게 보통 배부르고 등 따뜻할 때 발전한다고 알고 있다. 춥고 배고프면 먹는 게 먼저지 문화나 예술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1920년대 독일만큼은 예외였다. 온갖 어려움과 혼란 속에서도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됐다.

우선 당시 독일은 전통을 부정하던 예술 운동 다다이즘(Dadaism)의 중심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전쟁이 끝나면서 그 중심축이 독일로 옮겨졌다. 포토 몽타쥬 기법의 창시자 라울 하우스만(Raoul Hausmann), 하우스만의 동료로 함께 포토 몽타쥬 기법을 창안한 다다이즘 내 유일한 여성 운동가 한나 회흐(Hannah Höch), 캐리커처와 아카데미즘의 혼합으로 신랄하게 정치를 풍자했던 게오르그 그로스(George Grosz)···. 현대 예술계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이 독일 다다이즘의 흐름을 주도한 주역들이었다.

■ 다다이즘, 바우하우스, 표현주의 ··· 독일이 이끈 新문화ㆍ예술운동

실험 건축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바우하우스(Bauhaus)가 만들어진 것도 그때 독일이었다. 1919년 독일 중부 도시 바이마르에 들어선 바우하우스의 설립자는 현대 건축의 흐름을 이끈 건축계의 거장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그는 패전과 함께 폐허가 된 독일의 건축물과 건축학을 새로 일구겠다는 의지로 완전히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갖춘 건축학교를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바우하우스의 기여는 비단 건축에 그치지 않았다. 기계와 인간이 결합된 발레를 창안해 전후 무용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연 오스카 슐레머(Oscar Schlemmer)의 활동 공간 역시 이곳 바우하우스였음을 잊으면 안 된다.

거기에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도 있었다. 그가 누구인가? 1898년 출생해 1922년 스물넷의 젊은 나이로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를 그린 희곡 『밤의 북소리(Trommeln in der Nacht)』를 썼다. 그는 이 작품으로 당시 독일의 가장 중요한 문학상 중 하나인 클라이스트상(賞)을 수상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28년에는 서른의 나이에 이탈리아의 고상한 오페라를 서민용으로 바꾼 『서푼짜리 오페라』를 집필,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또한 세계 연극계에 큰 충격을 준 '이화효과(異化效果)'나 '서사연극(敍事演劇)' 등 그의 연극 이론은 그만의 독창성을 알게 해 준다. 감정이입이나 카타르시스를 막고 관객이 이성을 통해 세계를 비판적으로 보게 만든다는 그의 연극이론은 그리스의 소포클라스 이후 2000년 이상 이어온 연극 이론의 근간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겸 역사학자 폴 존슨(Paul Johnson)은 저서 『세계현대사』에서 이렇게 썼다. "1920년대 독일문명이 화려하게 개화하여, 단기간이라고는 하지만, 사상과 예술 분야에서 독일이 세계의 중심이 됐다"는 얘기였다. 또한 "이 업적은 오랜 시간 동안 가꾸어 온 성고였다"며 다음처럼 말한다. "독일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교육 선진국이며 이미 18세기 말에 식자율이 50%를 넘겼다"는 것이다. 또한 "19세기 들어 고등교육제도가 점차 확립됐고 학식의 깊이와 다양성 측면에서도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썼다. 그리고 뮌헨이나 베를린, 함부르크, 괴팅겐 등 세계적인 대학이 여럿 있다는 점도 이 문명 발전의 배경으로 꼽았다.

영화도 같은 맥락에서 다뤄진다. 대부분의 영화사 교재들은 1920년대 독일 영화를 아예 별도의 한 장(章)으로 취급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영화 역사가들은 이 장에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와 '아방가르드'라 이름 짓는다. 어떤 이들은 이 둘을 하나로 묶어 '표현주의'로 부르기도 한다. '표현주의'는 19세기 중엽 이후 유럽 전반을 지배했던 사실주의에 반항하는 문화ㆍ예술의 운동 또는 흐름을 뜻한다. 1910년 경 독일과 오스트리아 미술계에서 등장해 세계 문학과 연극, 영화, 건축 등 문화ㆍ예술 전반의 사상으로 자리 잡는다. 당연히 그 중심에 독일이 있었다.

1919년 제작된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1919년 제작된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1920년대 독일 영화가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것은 한편으로 당연하다. 그렇다면 '표현주의 영화'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데이비드 보드웰(David Bordwell)과 크리스틴 톰슨(Kristin Thompson)은 저서 『필름 아트』에서 독일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 대해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표현주의 회화(繪畫)"(p.550)라 말하며 표현주의 영화가 갖는 특성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 대한 그들의 부연 설명은 그 특성을 잘 꿰뚫어 보여준다.

"독일 표현주의는 미장센(mise en scene)에 크게 의존한다. 표현하려는 의도에 따라 형태는 비현실적으로 왜곡되고 과장된다. 배우는 자주 진한 분장을 하고 갑작스럽거나 느리게 또는 불규칙하게 동작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장센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전체 구성을 위하여 회화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점이다.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표현주의적 양식화는 광인의 왜곡된 시각을 전달해 주는 기능을 한다. 우리는 주인공에게 비쳐지는 세계를 보게 된다."(p.550)

'미장센(mise en scene)'이란 '무대에 배치한다'는 뜻을 갖는 프랑스어. 영어로는 'Putting on Stage'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연극 용어로 쓰였지만 영화에서도 쓰인다. 뜻은 같다. 단지 '무대'가 '화면'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결국 '표현주의 영화'란 '과장되고 왜곡된 그림처럼 화면을 꾸미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요즘도 이 같은 방식은 자주 쓰인다. 현실세계를 술이나 마약에 취한 사람의 시각으로 왜곡ㆍ과장되게 그리는 게 대표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의 장면이 삽입된 모든 영화가 표현주의 영화인 것은 아니다. 이 이름을 붙이려면, 이 같은 양식이 영화 전반의 주류가 돼야 할 것이다. 영화 <도박사, 마부제 박사>처럼 말이다.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