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5:25 (금)
[김성희의 역사갈피] 나라를 거덜낸 '교황'
[김성희의 역사갈피] 나라를 거덜낸 '교황'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1.07.1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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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명문 메디치가 출신인 레오 10세는 사치와 유흥으로 '빚더미'
대관식 축하 행진 때 교황의 시종들은 구경꾼들에게 금화 뿌리며 호기
재정 메우려 면죄부 남발…루터 종교개혁 촉발해 '하나님의 나라' 양분
피렌체의 명문 메디치가 출신인 레오 10세는 사치와 유흥을 즐겼다. 사진(성 베드로 대성당),그림('교황 레오 10세와 두 추기경',왼쪽)=우피치미술관/이코노텔링그래픽팀.
피렌체의 명문 메디치가 출신인 레오 10세는 사치와 유흥을 즐겼다. 사진(성 베드로 대성당),그림('교황 레오 10세와 두 추기경'(왼쪽))=우피치미술관/이코노텔링그래픽팀.

지금이야 그 권위를 꽤나 인정받지만 역대 로마 교황들 중에는 신의 대리인이기는커녕 패륜과 부패 그리고 탐욕의 상징이었던 이들이 적지 않았던 사실을 알 만한 이들은 안다.

이 같은 사실은 교황의 역사를 다룬 여러 책에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쓴 『독선과 아집의 역사』(바바라 터크먼 지음, 자작나무)은 조금 색다르다. 지도자 혹은 정치에 초점을 맞춰 "하나님도 돌아앉은" 르네상스기 여섯 교황의 치세를 다뤘기 때문이다.

이 중 레오 10세(재임 1513~1521)의 행적은 볼수록 기가 차다. 아, 그의 이름은 낯설지 않을지 모르겠다. 종교혁명의 빌미가 된 면죄부 판매에 연루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터크먼의 책에 따르면 피렌체의 명문 메디치가 출신인 레오 10세의 사치와 유흥은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의 대관식에 이어진 축하 행진을 위해 아치와 꽃다발로 거리 곳곳을 장식했다. 뿐인가. 교황의 시종들은 구경꾼들에게 금화를 마구 뿌려댔다. 이 축제에 들어간 비용이 전임 교황이 남긴 예비비의 7분의 1에 달했다.

자신의 가문을 빛내기 위해 성 로렌초 성당 안에 메디치 예배당을 만들도록 했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명품 대리석 운반만을 위해 120마일에 걸친 도로를 새로 만들었다. 1백 명이 넘는 수행원을 거느리고 매사냥, 사슴사냥, 낚시를 즐기곤 했다. 교황청 상서원은 막대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레오의 재임 기간 동안 돈이 될 만한 자리를 2000개나 만들어내야 했다. 매관매직만 한 것이 아니다. 레오는 사촌 둘, 조카 셋을 추기경직에 앉히는 등 인사도 패거리 위주로 돌아갔다.

그러니 당대에 활동했던 마키아벨리가 "로마궁정의 나쁜 표본이 온 이탈리아의 신앙심과 종교를 파괴하고, 그 결과 끝없는 불화와 소동이 일어나 우리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다"라고 갈파한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결국 빚더미에 올라앉은 레오 10세는 면죄부 판매에 나섰다. 일찍이 교회 재건축, 병원 건축, 투르크군에 잡힌 포로의 몸값 등 선행을 위해 바치는 경건한 기부금에 대한 답례이던 '은총'을 대대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1517년 루터가 면죄부 남용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양분되었다. 당대의 기득권층은 레오 치세를 '황금시대'라고 했다지만 훗날의 역사는 레오 10세가 기독교가 통일되었던 시대의 마지막 교황이라 증언한다. 낭비, 패거리 문화, 판단 미스 등 지도자의 그릇된 행보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산 증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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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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