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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위기史(12)더 본드⑫ 전쟁 돈 놀이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위기史(12)더 본드⑫ 전쟁 돈 놀이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07.19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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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쟁비용 쪼들린 영국에 대규모 차관으로 막대한 이자수입 올려
물자구매도 대행…독일엔 찔끔 꿔주자 독일계 미국인 모건 아들 저격

■ 미국을 세계 주역으로 이끈 '전쟁특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돈' 그 자체였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전쟁에는 돈이 든다. 규모가 천문학적이어서 "전쟁의 승패는 돈에 달려 있다"는 얘기까지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연합국 측이나 동맹국 측이 어디에서도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돈'을 구할 곳은 하나, 바로 미국이었다.

참전국들은 미국 정부나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었으며 심지어 금융시장에서 전시채권을 팔 수도 있었다. 은행 등 미국의 금융회사들에게는 그야말로 노다지였고 실제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미국의 최대ㆍ최고 금융회사 J.P.모건이 선두주자였다. 모건은행은 1914년 12월 연합국의 전쟁 물자 구매 에이전시가 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대행 사업은 계약 체결과 동시에 시작됐다. 1915년 1월 모건은행은 영국을 대신해 1200만 달러어치의 말을 구입해줬던 것이다. 말은 당시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운송수단이었다.

이후 규모는 점점 더 커져 전쟁 기간 동안 모건은행이 대행한 물자 구매는 3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연합국이 미국에서 조달한 전체 물량의 절반에 해당됐으며 조달 액수의 1%를 수수료로 받기로 한 모건은행은 이 계약만으로 3000만 달러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중요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차관이었다. 전쟁 전 방위비가 연간 5000만 달러에 불과했던 영국의 방위비는 전쟁이 터지자 하루 500만 달러가 들어갔다. 영국은 당연히 미국에 손을 벌렸다. 모건은행은 무려 5억 달러의 차관을 마련했다. 영국이 이전까지 발행했던 최대 규모는 보어전쟁 때의 1억 달러였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자마자 그 5배에 이르는 돈을 원했던 것이다(Chernow, 2007: 347-348). 이 채권의 이자율은 연 6%로 미국 월스트리트는 가만히 앉아서 연간 3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미국은 영국에 무려 15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한다.

연합국 측에 대한 과도한 자급지원으로 격분해 모건은행의 오너인 잭 모건을 테러, 총상을 입힌 독일계 미국인 프랭크 홀트(Frank Holt)
연합국 측에 대한 과도한 자급지원으로 격분해 모건은행의 오너인 잭 모건을 테러, 총상을 입힌 독일계 미국인 프랭크 홀트(Frank Holt).

미국은 유럽의 전쟁에서 '중립'을 천명했다. 따라서 연합국뿐 아니라 동맹국에도 물자조달은 물론 차관 제공까지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유는, 뻔했다.

연합국의 주축인 영국은 미국 지도층과 같은 뿌리였던 것이다. 백인이고, 앵글로-색슨 계열이고, 거기에 언어도 같았다. 연합국에 대해서는 무려 25억 달러를 빌려준 반면 독일에 빌려준 돈은 45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이 같은 편파적인 행태는 독일계 미국인들의 분노를 샀다. 이 분노는 결국 테러로까지 이어졌다. 1915년 7월 3일 프랭크 홀트(Frank Holt)라는 독일계 미국인은 피어폰트 모건의 아들이자 당시 모건은행의 최대 주주인 잭 모건에 총격을 가했던 것이다. 잭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말았다.

자, 이제 미국이 '고립'이라는 전통적인 외교정책을 포기하며 유럽의 전쟁에 뛰어들었던 진정한 이유를 알아보자.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전 때문에? 미국 땅을 멕시코에 넘겨주겠다는 침머만 전보 때문에? 러시아혁명으로 연합국 전선이 흐트러지는 게 두려워서? 아니다. 이미 언급했듯 윌슨의 전쟁 참여는 이미 1917년 4월 윌슨이 참전 연설을 하기 1년 전 결정됐다.

물론 겉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1916년 선거에서 그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그는 재선을 위해 전쟁을 반대하는 유권자들에게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독일의 잠수함이나 침머만 전보는 그저 명분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윌슨이 참전을 결정한 진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 말했던 대로, 바로 '돈'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돈이 없었다. 더 이상 돈을 빌릴 수도 채권을 찍어낼 수도 없었다. 세금도 걷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영국과 프랑스가, 돈 때문에 독일에 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영국과 프랑스에 빌려줬던 돈이 휴지조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엄청난 낭패였다. 결국 미국은 스스로 돈을 만들어 자기 돈으로 전쟁에 뛰어 들어야 했다. 자기 돈이 휴지조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단지 선거로 인해 그 행동이 1년 뒤로 미뤄졌던 것뿐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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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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