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3:05 (토)
[김성희의 역사갈피] 비트코인의 신기루
[김성희의 역사갈피] 비트코인의 신기루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1.04.27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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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은 젊은층들의 '일확천금 투기장' 인생도박
미국의 서부 골드러시로 돈 번 사람은 극소수 불과
막차 탄 사람들 대부분 식량난, 인디언 위협 시달려
"성공사례가 수백만 명의 실패자를 지워버려"경구
ⓒ이코노텔링그래픽팀
ⓒ이코노텔링그래픽팀

비트코인 열풍이 뜨겁다. 달리 뾰족한 수가 없는 젊은이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너도나도 비트코인 투자에 뛰어든다. 어느 월급쟁이가 400억 원을 벌어 사표를 냈다는 풍문도 이를 부채질한다.

세계사를 살펴보면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 18세기 영국의 남해회사 파동 등 굵직한 투기 소동이 여럿 있었다. 이 중 하나가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벌어진 '골드러시'다.

1848년 1월 어느 날 오레곤주에서 제재소를 짓던 이가 개울에서 금 한 조각을 발견한 것이 시작이었다. 다음주 맺어진 멕시코와의 강화조약으로 캘리포니아의 모든 금은 미국인 소유가 되었다. 이 무주공산에 가장 먼저 당도한 1만 명가량의 미국인들에게 캘리포니아는 그야말로 동화 속 꿈나라였다.

토지 소유권이나 비싼 도구 없이도 강바닥에서, 흙 밑에서, 나무뿌리 사이에서 손쉽게 금을 찾았다. 건국 이후 1847년까지 반세기 동안 금 채굴 양은 37톤 정도였으나 이곳 서부에서는 이후 10년간 매년 평균 76톤이 채굴되었을 정도였다. 운 좋게 30그램 정도만 찾아도 당시 동부의 1주일치 임금과 맞먹으니 사람들이 "서부로, 서부로"를 외칠 수밖에. 이후 몇 년간 미국 젊은 남자의 5%가 서부로 향했다. 1849년에는 10만 명, 1850년에는 20만 명 정도가 남부여대해서 서부로 이주했다고 추정됐다.

그러나 깨지 않는 꿈은 없다. 1849년 캐낸 금의 양은 1848년 캐낸 양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갈수록 금을 캐기 어려워지고, 드물어진 것이었다. 금은 발견된 지 불과 4년 만에 전체 생산량이 절정에 달했고, 광산업은 점차 상당한 자본과 경영 능력이 필요한 '산업'이 되었다. 결국 초창기 운 좋았던 몇몇 사람들에 비해 운 없는 이들은 그 열 배, 백 배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가족까지 이끌고 서부로 온 이들이 식량난과 인디언의 위협 등에 직면해 겪은 고생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건 미국사의 허상을 까발린 『판타지랜드』(커트 앤더슨 지음, 세종서적)에 실린 일화다. 이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벤저민 프랭클린에서부터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에 이르기까지, 극도로 성공한 기업인들의 이야기는 수백만 명의 잊힌 실패자들과 어리석은 사람들을 지워버린다."

골드러시로 돈을 번 이들은 청바지와 곡괭이를 판 사람들뿐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도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하루 매출이 100억 원에 이른다는 뉴스가 공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역마차를 타고 먼길을 가면서 저녁이면 모닥불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던 그 건장하고 멋진 서부 사나이들이 캘리포니아에 가서 모두 부자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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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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