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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상거래의 성당' 백화점의 등장
[김성희의 역사갈피] '상거래의 성당' 백화점의 등장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1.04.2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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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상 하던 부시코, 1855년 만국박람회 뒤 에펠 탑 설계자에 백화점 건설 맡겨
무쇠로 건물 세우고 채광창 만들어 자연광이 쏟아지도록 하는 등 첨단 공법 동원
5만여 ㎡ 규모…"길을 잃게 만들어 생각이 없던 상점까지 둘러보기해 소비 유도"
견물생심 부작용…부유층 여성이 백화점서 값비싼 물건 훔치는'백화점 병' 유행
사진=Le Bon Marché Rive Gauche/이코노텔링그래픽팀.
사진(봉 마르셰 백화점)=Le Bon Marché Rive Gauche/이코노텔링그래픽팀.

코로나 19가 갈수록 기승이다. 그 와중에도 여의도에 문을 연 더현대 서울 백화점에는 인파가 몰려 즐거운 비명을 지를 지경이란 소식이 얼마 전 언론을 장식했다. 5인 이상 모임을 금지하는 등의 방역 당국 노력을 비웃는 듯한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백화점의 힘은 세다. 처음 등장한 19세기에는 호화로운 상품들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그곳을 '민중의 궁전', '상거래의 성당'이라고도 일컬었을 정도로 소비와 문화의 중심이었다. 백화점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 프랑스 파리에서 1887년 위용을 드러낸 봉 마르셰 백화점이다. 

잡화상을 하던 아리스티드 부시코는 1855년 만국박람회를 참관한 뒤 인간의 꿈을 실현하는 '환상의 공간'을 마련한다. 에펠 탑을 설계한 공학자 구스타브 에펠을 채용해 무쇠로 건물 구조를 세우고 채광창을 만들어 널찍한 통로에 자연광이 쏟아지도록 하는 등 첨단 공법을 동원한 백화점을 지었다. 넓이가 무려 5만여 평방미터로, "사람들이 몇 시간이고 거닐다가 길을 잃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전혀 생각이 없던 상점까지 둘러보고 눈에 띄는 물건을 사게 된다"는 부시코의 지론을 반영한 결과였다.

이후 백화점의 눈부신 성장과 영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흥정 관행 대신 정가에 박리다매 관행이 자리 잡았고, 고객에게 신용 결제를 위한 카드를 최초로 발행하는 등 소비문화의 총아로 등장했다. 수천 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복잡한 유통망을 관리했으니 최초의 대형 서비스 산업 조직이라 해도 무방했다.

한데 뜻밖의 부작용이 등장했다. 견물생심이랄까 부유층 여성들이 백화점에서 값비싼 물건을 훔치는, 이른바 '백화점 병(department store disease)'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던 것이다.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의학계에서 연구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백화점 병'은 기존 범죄학 이론도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당시엔 범죄란 생리적 결함이 유전되어 발생하는 병리 현상이며, 이탈리아 범죄학자 체사레 롬브로조의 이론이 강세였는데 대부분의 백화점 절도는 '좋은 집안' 출신들이 저질렀으므로 범죄는 환경요인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이란 이론이 힘을 얻었다. 이에 따라 당연히 처벌과 교화 등 범죄에 대처하는 형사정책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쇼핑몰이나 온라인 쇼핑에 밀려 갈수록 위세를 잃어가고 있지만 백화점의 등장은 그야말로 획기적이었다. 이건 재미와 놀이가 문명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핀 『원더랜드』(스티븐 존스, 프런티어)에 실린 흥미로운 이야기 한 토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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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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