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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한양 천도의 '부동산 후유증'
[김성희의 역사갈피] 한양 천도의 '부동산 후유증'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1.03.23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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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공사 시작하면서 관리들에게 품계에 따라 집터 분양…남의 집터를 빼앗은 사례도
새 도읍지 후보 놓고 갑론을박 이어지자 길흉 점치는 동전 던지기 척전(擲錢)으로 결정
자료=유튜브 문화유산채널/이코노텔링그래픽팀.
자료(한양의 지도)=유튜브 문화유산채널/이코노텔링그래픽팀.

문제는 부동산이다. 지난해에는 아파트 값이 너무 올라 집주인이며 세입자들의 아우성이 빗발치더니만 이제는 LH 직원 등 개발 정보를 이용한 땅 투기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사에서 이런 부동산 문제가 가장 시끄러웠다면 조선 개국과 더불어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했던 15세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는 한양 천도가 고려의 흔적을 지우고, 기득권 세력의 뿌리를 뽑기 위해 단행된 것으로 배운다. 한데 아니다.

여말선초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천도가 만만치 않았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개경에서 한양까지』(이승한 지음, 푸른역사)란 책이 있다.

지은이는 고교 교사 출신으로, 흥미롭고도 탄탄한 고려사 집필자로 이름난 이다. 그가 여말선초를 조명한 이 책의 2권에 한양 천도를 다룬 '보론'이 실렸는데 여기 천도 과정이 소상히 나온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이성계가 한양 천도를 지시했지만 한때는 계룡산(충청도 공주)과 무악도 도성 후보지로 물망에 올랐단다. 공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천도를 단행한 것이 태조 3년(1394) 10월 25일 일이다. 이게 우격다짐에 가까웠던 것이 정식으로 왕도 공사에 착수한 것은 그해 12월 3일이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종묘 공사를 시작으로 문무관리들에게 관품의 고하에 따라 집터를 분양했다고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남의 집터를 빼앗아 탄핵을 받은 개성부 판사 이거인 같은, 투기꾼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태조를 이은 정종 1년(1399) 경복궁에 까마귀들이 몰려드는 등 천변지이를 이유로 기껏 터를 잡기 시작한 한양을 떠나 도로 개경으로 돌아갔다. 이후 태종 4년(1404) 무악에 직접 행차해 현지답사를 한 이방원은 10월 6일 "종묘에 들어가 송도(개경), 신도(한양), 무악 세 곳을 알리고 길흉을 점쳐 도읍을 정하겠다. 정한 뒤에는 천재지변이 있더라도 이의가 있을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선포한다.

이렇게 해서 동전을 던지는 척전(擲錢)과 제비뽑기 같은 시초(蓍草) 중 척전을 택해 세 곳에 대해 동전을 세 번씩 던졌다. 그 결과 한양이 2길 1흉, 개경과 무악은 1길 2흉으로 나왔다. 이에 따라 즉시 향교동에 이궁을 조성하고 천도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고 한다.

역사의 물줄기는 사소한 계기로 바뀌는 일이 적지 않다. 한양 천도가 그랬다. 동전이 구르다 몸을 드러냄에 따라 이른바 600년 도읍지가 정해졌으니 말이다. 누군가의 손가락 놀림에 따라 21세기엔 1,000만 명이 개성에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니 이 경우 사람 팔자는 시간 문제가 아니라 동전 문제라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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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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