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코어 매각 계기로 위기 헤쳐 가려는 그룹에 수완 발휘 주목
2003년 박용만 두산 사장(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의 전신)의 인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미 잉거솔랜드 사의 소형건설중장비사업부문 밥캣이 눈에 들어왔다.
해외에 나가 사업을 크게 벌이려면 인수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인수 후보 리스트에 올렸다. 밥캣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오기 전이었다.
"실무 팀에 좀 더 두고 보자고 했어요. 밥캣은 이 회사의 주력 부문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4년 만에 매물로 나왔습니다. 4년 전 인수를 검토한 결과가 있으니 의사결정도 쉬웠죠. 애초에 우리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면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을 거예요."
2007년 두산인프라코어의 밥캣 인수가는 49억 달러(5조 원)로 당시로선 국내 기업 사상 최대의 글로벌 M&A였다. M&A의 귀재 소리를 듣는 박 회장은 "M&A의 80%는 인수 경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결정 난다"고 말했다. 철저한 준비가 인수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M&A의 성공은 얼마나 싸게 샀느냐가 아니라 인수 후 기업 가치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말한다. 기업 가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핵심 비결이라는 이야기다. 인수 대상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는 게 M&A 성공의 조건인 셈이다.
"인수가액을 얼마나 낮게 써야 하는지는 정답이 없습니다. 다자가 경쟁하는 입찰 구도에서 경쟁사가 얼마를 써 낼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실제로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할 당시 두산이 터무니없이 높게 썼다는 이야기가 재계에 돌았다. 이 회사는 그러나 두산의 인수 후 연간 40%대의 성장을 기록했다.
"매물 기업의 가치를 100억 원으로 잡고 인수 후 150억 원짜리 회사로 만들 수 있다고 치죠. 그런데 20억 아끼자고 80억 원이라고 썼다가 90억 적어 낸 경쟁사에 넘어가면 50억 벌 기회를 놓치는 겁니다. 그런 리스크를 안을 이유가 없어요."
그는 M&A를 할 때 가장 쉬운 게 바로 사고파는 행위 그 자체라고 덧붙였다.
"돈을 준비해 유능한 투자은행(IB)의 도움만 받으면 됩니다. 정작 중요한 건 인수한 기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일입니다. 인수 후 경영에 성공해야 후속 M&A 때 자신감이 생기고 M&A의 선순환이 이뤄지죠."
현대중공업 컨소시엄이 지난 10일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박 회장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임기는 2021년 3월까지이다. 그는 두산인프라코어 지분이 없다. 그런데 두산밥캣의 최대 주주는 두산인프라코어다. 두산그룹은 두산인프라코어→두산중공업→(주)두산 순으로 지배구조가 형성돼 있다.
두산 안팎에선 두산이 밥캣을 그룹에 남겨두고 박 회장이 두산밥캣 회장을 맡을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건설기계업의 명맥을 이 회사를 통해 이어갈 거란 전망이 그 바탕이다. 박 회장은 두산을 소비재 그룹에서 중공업 그룹으로 변신시킨 주역이다.
두산그룹은 그 때에 이어 올해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 탈원전·탈석탄 흐름은 두산중공업 경영난을 불러왔고 두산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로 이어졌다.
경영학을 전공한 오너 3세 박 회장에게 경영자로서의 꿈이 무엇인지 물은 일이 있다. 그는 "가장 오래된 한국 기업 두산을 앞으로 100년은 갈 회사로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두산이 또 지속가능성 위기를 맞은 지금 그는 다시 그 길을 찾고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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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노텔링 이필재 편집위원 ■ 중앙일보 경제부를 거쳐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월간중앙 경제전문기자, 이코노미스트ㆍ포브스코리아 경영전문기자,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전문기자 등을 지냈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에게 배워라-대한민국 최고경영자들이 말하는 경영 트렌드>, <CEO를 신화로 만든 운명의 한 문장>, <아홉 경영구루에게 묻다>, <CEO 브랜딩>, <한국의 CEO는 무엇으로 사는가>(공저) 등 다섯 권의 CEO 관련서를 썼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잡지교육원에서 기자 및 기자 지망생을 가르친다. 기자협회보 편집인,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이사로 있었고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초빙교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