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하복 관료체계서 국장거쳐 들어온 송인상 장관 '주문'에 마이동풍
재무부 쫓겨 날 처지였지만 이한빈 국장의 ' 스카웃 제의 '로 위기 넘겨
쓰루는 2년의 차관 비서생활을 접고, 1957년 8월 1일부로 이재국 관리과장(증권·보험 등 제2금융권 담당)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처음으로 한 분야를 책임지는 과장 자리를 차고앉자마자 그는 부하 직원 담금질을 시작하였다.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듯한 관료들에게는, 고시까지 패스한 엘리트 공무원을 공부시키겠다는 과장은 그가 처음이었다. 원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담금질을 멈출 그가 아니었다. 그는 과장 자리가 부여하는 권한을 철저하게 챙겼다. (고성 촌놈 중에 중앙 부처 과장은 그가 처음이었다!) 일에 관한 한, 법 규정에 어긋나는 윗사람의 명령이나 부탁은 그에게 '쇠귀에 경 읽기'였다.
이재국은 상의하달 체제로 움직이는 조직이었다. 아랫사람으로서의 그는 그런 조직에 순응할 수도, 오래 붙어 있을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집안도 성품도 '양반'인 김정렴 국장에게 '거친 촌놈' 쓰루는 손안에 들어오지 않는, 영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결국 그는 쫓겨나다시피 이재국을 떠나야 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윗분들' 말을 듣지 않는 데 있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이 스토리는 순전히 쓰루의 관점에서 풀어나갈 수밖에 없음을 양해하기 바란다.) 어느 날부터 송인상 재무부 장관이 수차례에 걸쳐 그에게 직접 또는 김 국장을 통해 자신의 친인척에게 특혜를 주라는 압력을 넣어왔다.
제2금융권 담당 관리과장인 쓰루에게 지시한 것으로 봐서, 그 특혜는 보험이나 증권 관련 인허가 사안이었을 것이다.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당시로서는 그 인허가가 제도적으로 크게 무리가 있는 사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장관의 지시를 따르려 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장관에게 미운털이 박혔고, 중간에 끼인 김 국장의 입장은 매우 곤란해졌다. 김 국장의 배포로는 혼자만의 결단으로 쓰루 같은 인물을, 더구나 자신이 관료 출신이 아닌 처지에'대한민국 정통 관료 1호'를 내칠 수는 없었다. 결국 장관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평소 그의 사람됨을 익히 알고 있던 이한빈 예산국장이 장관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여 그를 예산4과장으로 데려갔다.
(장관) "아무래도 이재국에서 김학렬 과장을 내보내야 하겠소."
(예산국장) "그러면 예산국에 주시지요. 예산국 과장은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다른 부처 사람도 상대해야 하니까 성격이 강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의 첫 번째 은인을 만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