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빚투'(대출자금으로 투자) 등의 영향으로 급증한 신용대출이 잠재적 금융 위험 요소로 지목되자 은행권이 대출 총량과 속도 조절에 나섰다. 우대금리 폭을 줄여 전체 신용대출 금리 수준을 높이고, 최고 200%였던 일부 전문직의 연간 소득 대비 신용대출 한도도 줄인다.
금융계에 따르면 은행들이 자율적인 신용대출 관리 방안으로 우대금리 하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10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연 1.85∼3.75% 수준이다.
각 은행에서 최저 금리로 돈을 빌리려면 우대금리(금리할인) 혜택을 최대한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우대금리는 해당 은행계좌나 계열 카드 이용실적, 금융상품 가입 유무 등 부가조건에 따라 부여된다.
우대금리 수준은 은행상품에 따라 다른데 낮게는 0.6%, 높게는 1% 수준이다. 은행들은 깎아주는 우대금리 폭을 줄여 신용대출 금리 수준을 지금보다 높임으로써 대출 증가 속도를 늦출 방침이다.
일부 은행이 선제적으로 이달 1일 자로 신용대출 우대금리 할인폭을 0.2%포인트 줄였다. 다른 은행들이 신용대출 금리를 비슷한 폭으로만 높여도 현행 신용대출 금리 범위(1.85∼3.75%)를 감안할 때 상징적 의미의 '1%대 신용대출 금리'는 사라진다.
은행들은 특수직(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포함) 등에 대한 신용대출 한도도 낮출 방침이다. 은행권의 신용대출은 보통 연소득의 100∼150% 범위에서 이뤄진다. 특수직의 경우 은행에서 많게는 연소득의 200%까지 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연봉이 1억5천만원이라면 담보 없이 신용대출로 3억원을 끌어 쓸 수 있다.
금융감독원은 14일 시중은행 부은행장(여신담당 그룹장급)들과의 화상회의에서 "최고 200%에 이르는 신용대출 소득 대비 한도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전달했다. 소득 대비 한도 비율 뿐 아니라 신용대출 절대 금액이 너무 큰 점도 거론됐다. 대출액 5천만원~1억원은 일반적인 생활자금 용도로 볼 수 있지만, 2억∼3억원의 신용대출은 '투자 수요'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으로선 금융기관의 건전성 관리와 부동산시장에로 자금 유입 차단을 위해 신용대출 급증세를 진정시키고 대출 총량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그렇다고 서민의 생활자금용 신용대출까지 조일 수는 없으니, 결국 낮은 금리로 수억 원씩 빌리는 고신용·고소득 전문직의 신용대출부터 줄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은행들은 수익성 관리를 위해 신용대출 금리 인상과 한도 축소를 동시에 진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신용대출 금리 인상 자체가 대출 수요 감소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이익을 내야하는 은행 입장에선 '공급'인 신용대출 한도를 줄이려면 '가격'인 금리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금융당국와 은행권의 신용대출 규제 움직임이 알려지자 금리 및 한도가 유리할 때 대출을 미리 받아두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신용대출 증가 속도가 일시적으로 빨라지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금감원-부은행장 화상회의가 열린 14일과 이튿날, 2일 동안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은 은행에 따라 996억∼2014억원씩 총 6568억원의 잔액이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