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7:30 (토)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36) 기획원 전성시대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36) 기획원 전성시대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econopal@hotmail.com
  • 승인 2020.11.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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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등 신규 프로젝트와 사회보장 등 경제혁신 정책 지원 할 부처 행정력 미진할 때여서 '콘트롤타워' 역할
이낙선 상공장관 '나는 로봇' 볼멘소리…주요정책 발표때마다 경제장관 합동회견 열고 마이크는 쓰루 차지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이코노텔링 그래픽팀.

모든 길은 기획원으로 통했다. 당시는 경제개발 초기일 뿐 아니라, 행정 체제가 아직 전문화되지 않아 부처 간 업무 분담이 모호하거나 그 정책만을 위해 별도의 부처를 두기에는 행정적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인적자원개발, R&D 등 과학기술, 사회보장제도, 노동 등 정책과제 대부분이 개별 부처로 독립되어 나가기 전까지 기획원이 관장하던 부문이었다. 또 특정 국가사업의 관할 부처가 있어도 거기에 소요되는 행정력, 재정 및 기술 등이 개별 부처의 능력을 웃도는 경우에는 기획원이 사업 총괄 역할을 맡게 되었다.

경부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석유화학산업단지 조성, 종합제철소 건설, 국방군수산업 육성 등도 그 관행적 업무 분담으로는 주무 부처가 건설부, 상공부, 국방부 등이었으나, 거기에 동원해야 할 재원, 기술, 인력 등은 개별 부처의 능력을 벗어난 것들이었다. 그런 때에는 대부분 박통이 나서서 기획원에 그 총괄 역할을 맡기곤 했다.

수출 진흥, 물가 대책 등 성격상 여러 부처가 관여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부총리이자 경제팀장으로서 그 총괄 업무를 쓰루가 맡았다. 그런데 그 총괄의 빈도나 강도가 여타 부처와 그 장관들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하였음은 불문가지다.

부총리 취임 1주년을 맞은 쓰루는, 물가가 안정되고 주요 언론들이 그의 긴축기조 견지를 지지하는 등 분위기 탓인지, 얼굴이 자신감에 차 있다.
부총리 취임 1주년을 맞은 쓰루는, 물가가 안정되고 주요 언론들이 그의 긴축기조 견지를 지지하는 등 분위기 탓인지, 얼굴이 자신감에 차 있다.

4대강 유역 개발사업도 건설부, 농림부, 교통부, 내무부 등의 일들이 겹쳤고, 4대 핵공장 건설사업은 상공부, 국방부 등과 긴밀한 협조 없이는 추진이 될 수 없었다.

이낙선 씨와는 그가 국세청장을 거쳐 상공부 장관이 된 초기까지는 사이가 좋았다. 이 장관은 자기를 상공부 장관으로 추천한 게 쓰루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속전속결 스타일로 서로 통하는 사이였다. 그가 상공부 장관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어느 날 그가 장관 집무실로 엄일영 부총리 비서실장을 불러서는 "요즘 내 체면이 말도 아니다. 포항제철, 4대 핵공장, 중화학공업단지 등등 전부 다 기획원에서 하지 않느냐? 상공부 장관인 내가 뭐가 되느냐? 나는 완전히 로봇 장관이야. 창피해서 더 이상 못 하겠어. 그만둬야겠어"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엄 실장에게서 그 얘기를 전해 들은 쓰루도 '이 장관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겠다'고 인정했다. 그렇다고 그의 전 부처 휘몰아치기가 쉽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가 굵직굵직한 국정과제에 자주 나서게 되면서, 개별 부처의 불만은 해소의 기회도 없이 쌓여만 갔다.

쓰루는 주요 정책에 '종합 대책'이란 이름을 붙이기를 좋아했다. 또한 관계 부처 장관 등을 대동하고 대국민 정책 발표하는 것을 트레이드마크처럼 자주 활용했다. 그것은 나서기 좋아하는 그의 마음에 드는 방식이기도 했다. 여러 부처가 관련되고 특히 정부의 일치된 정책 의지를 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예외 없이 합동 기자회견을 했다. 선거 때처럼 거창하게 '잔치'를 벌여야 할 때는 아예 관계 장관회의를 경제기획원이나 중앙청이 아닌 지방 주요 도시에서 개최했다.

물가, 수출, 농촌 및 지역개발 등이 합동 회견의 주요 정책과제이다보니, 재무장관, 상공장관, 농림장관, 건설장관, 교통장관 등이 기획원 회견장에 자주 불려 나왔다. 합동 기자회견에서 발제도, 주요 정책 설명도 모두 그가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식이어서, 관계 장관들은 배석만 하고 (기자 질문에) 답변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합동 회견에서는 김 부총리가 주연으로서 화려한 스탠드 플레이를 하고 다른 장관들은 조연 격이었다. 동원된 다른 장관들은 오기는 왔지만 들러리 역할에 즐거운 표정들은 아니었다. 기자들 질문에 대한 장관들의 답변이 미심쩍다 싶으면 김 부총리가 얼른 마이크를 잡고는 대신 설명을 했다."

쓰루의 독주에 다른 부처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지만, 그는 박통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서슬 퍼런 국방부까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던 시절이었으니 다른 부처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관계 장관과 이견이 생길 때마다 늘 그가 판정승을 했다. 이렇게 되자 한때 약한 모습을 보였던 기획원의 힘은 다시 막강해졌다. 왕초 시대에 이어 제2의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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