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세번째 규모의 공묘(孔廟) 품격 인상적… 윈난 과거급제자의 절반배출 자부심
그제 저녁 늦게 이곳 젠수이에 도착하느라, 어제는 하루 종일 웬양 계단논밭으로 이동하여 그곳을 둘러보느라 이곳 젠수이고성 지역을 제대로 둘러볼 수 없었다. 오늘 쿤밍으로 돌아가기 전 오전에 시간을 짜내서 젠수이 고성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젠수이는 중국 서남지역에서도 손꼽히는 역사문화도시로 과거 왕조 시기 이 지역의 교육문화 수준이 상당히 높았던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역사적으로 축적되고 평가된 문화 역량으로 젠수이는 중국정부가 발표하는 역사문화도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젠수이는 윈난의 남부지역 紅河의 북안에 자리잡은 도시로 한족을 비롯한 이족, 회족, 하니족, 다이족, 먀오족 등이 주로 거주하는 곳으로 중국정부는 지난 1994년 이지역을 역사문화도시로 지정한 바 있다.
예전 당왕조 시기 이 지역의 독립왕국이었던 남조국이 처음으로 토성을 축조하였고 '후이리'성으로 명명했다.
'후이리'란 말은 현지 소수민족언어로 이를 한어로 옮기면 젠수이(建水)가 된다. 즉 젠수이란 도시의 역사가 독립왕국이었던 남조국에서 시작되어 그 역사가 1200년에 이르고, 명의 홍무 연간에는 토성을 확장하여 벽돌로 쌓은 塼城으로 증축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전란과 지진을 겪으면서 남서북문은 부서지고 복구하고 했으나 동문인 조양루는 약간의 손상은 있었으나 굳건하게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변방지역인 윈난의 거의 남단도시인 젠수이의 공묘(孔廟 달리 표현해서 文廟)는 공자의 고향땅인 산동 곡부의 공묘와 북경의 공묘에 이어 그 규모가 우선 중국 전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이고, 건축의 구조와 아름다움에서 중국에서도 선두를 달린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런 문화적인 요소와 함께 명청 시기 윈난 지역의 진사와 거인을 배출한 숫자는 윈난 전체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높았다고 한다.
이처럼 광대한 하나의 성지역에서 하나의 작은 도시지역이 전체 성지역에서 배출한 과거급제자의 절반을 배출한 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 자료가 설명해주고 있다.
젠수이의 또 다른 지명은 臨安으로 '臨半榜'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또 윈난 남쪽의 '鄒魯之鄕'으로 불리기도 한다.
'臨半榜'이란 임안의 과거급제자가 성 전체지역의 절반에 이른다는 것으로 자신의 고장에 대한 강한 자부심의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청조시기 이곳 젠수이에 무려 4곳의 서원이 세워졌고 지역교육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젠수이의 문화유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교이데올로기의 상징인 공묘이고 이밖에 명조 홍무 연간에 축조한 고성벽 가운데 거의 원형이 온전히 남아있는 동쪽문인조양루, 쌍룡교, 지림사, 과거 지역의 통치자였던 토사의 집무실, 옥황각, 주가화원 등 여러 고적들이 남아있다.
즉 도시의 역사가 1200여년에 이르는 젠수이는 윈난지역에서 개발이 앞선 지역이었고 문묘 이외 사찰, 탑과 각종 누각, 다리, 전통 민간주택 등 고건축물이 100여채가 있어 '고건축박물관'으로 부르기도 한다.
짧은 시간 젠수이고성지역을 둘러보고 아쉬움을 남기고 터미널로 이동했다.
여행 막바지에서 약간 불운을 겪었다. 쿤밍행 버스에서 짐을 싣는 과정에서 짐칸의 열린 덮개에 이마 중간부분을 부딪여 피부가 약간 찢어지고 피가 났다. 손수건으로 응급처치를 했다. 다행히 피는 멎었지만 약간의 진물이 나는 것 같다. 쿤밍에 도착한 후 몇 군데 호텔을 들른 끝에 결국 한 호텔을 선택하였다.
호텔 이름이 다소 낭만적이다. '雲上四季'( 구름위의 사계절). 방이 깨끗하고 그럭저럭 괜찮다. 방값은 229위안인데 회원에게는 27위안 할인하여 202위안이다. 즉석에서 30위안의 입회비를 내고 회원카드를 만들었다.
여행의 마지막 지점인 쿤밍에 오니 제법 무거운 피로가 몰려오는 듯하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서 이마의 상처 부위는 손은 대지않고 샤워기로 씻어냈다. 저녁식사는 호텔에서 해결하기로 하다.
6층의 식당으로 올라가서 맵고 시큼한 배추요리와 파와 마늘을 넣어 볶은 돼지고기 요리를 주문하였다.
좌석에 앉아 멀찌감치 보이는 주방을 살펴보니 아주 깨끗하고 요리사들의 모습도 단정하였다.
안심이 되면서 긴장이 더 풀린다. 제법 시간이 흐른 후 나온 요리도 시각적으로 아주 깔끔해 보였고 막 지은 듯한 밥도 아주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에 좋다는 선조들의 말씀이 그대로 맞는 것 같다. 밥과 반찬 맛이 모두 좋았다.
저녁을 먹은 후 직원에게 중심가 위치를 확인하고 3블럭을 이동하여 금마방 광장에 도착했다. 한달전 쿤밍을 왔을 때 기억이 뚜렷하게 살아난다.
이곳이 중심지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맥도날드, 켄터기, 스타벅스 등등 여행객에게도 중요한 주요 브랜드 음식료 가게가 대부분 몰려있다.
세련된 상가거리에 일부는 보행자전용도로로 이뤄져있는 이길의 이름은 正義路다.
커피도 한잔 사 마시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중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외국자본유통업체인 카르푸에 들러 생수 등을 구입하고 약국에 들러 옥도정기와 면봉을 사서 호텔로 가다.
근교의 유명한 관광지인 석림과 구향을 좀 편하게 구경하기 위해 여행사에 전화를 걸었다.
호텔에서 소개한 여행사는 석림당일 관광비용이 240위안이라고 한다. 이전에 받아두었던 전단지에는 120위안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를 설명해달라고 하자 우리는 240위안이라며 더 이상 설명을 않는다.
다른 전단지에 나온 여행사로 전화를 하니 여행객이 몇 명 이냐, 휴대폰 전화번호를 알려달라, 좀 기다리라 등등 말이 많았다.
휴대폰이 국제전화라 곤란할 거라고 했더니 그래도 알려달라고 하여 한국 전화번호를 말했더니 그제서야 외국인이냐 묻고는 그렇다면 500위안이라며 가격을 배 이상 올린다.
바로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늘 해오던 방식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혼자 다녀와야겠다. 중국 여행책자에 의하면 동부터미날이나 기차역에 가면 석림행 직행버스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