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미세먼지의 포로가 됐다. 특히 서울 강남은 초미세먼지의 기습에 갇혔다. ‘매우 나쁨’ 기준치의 두 배가 됐다고 한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독가스 공장에 있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을까. 초미세먼지는 뇌보호막을 뚫고 들어와 뇌졸증과 치매를 일으킬수도 있다 하니 더욱 그렇다.
14일 오후 4시가 넘어가자 서울 강남 압구정동은 안개 자욱한 새벽과 같은 분위기였다. 빌딩들은 불을 켰고 네온사인도 들어왔다. 차량들도 꼬리 등을 밝혔다. 외출을 자제하다보니 영세상인들의 매출도 뚝 떨어져 울상이다. 경기도 하남시청 앞 골목 모퉁이에서 고구마 몇 알을 놓고 좌판을 연 할머니가 쓸쓸하다. 마스크를 썼지만 생활전선에서 분투하는 모습이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미세 먼지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대선 때도 주요 정책이슈였다. 그러나 그 때 뿐이었다. 중국 탓만 하고 이렇다 할 중장기 조치가 나오지 않고 있다.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는 원자력 발전의 감축을 밀어 붙이는 정부는 국민들에게 미세먼지 농도 안내문자를 보내고 사흘째 비상저감 조치를 취하는 것 외에 속수무책인 것 같다.
일부 전문가들은 “원전사고 위험보다 대기오염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으나 정부는 탈원전 정책의 고수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송영길 의원이 원전(신한울 3·4호기)건설을 촉구하고 나섰다가 혼이 났다. 청와대와 이해찬 당 대표의 싸늘한 시선에 고개를 숙였다. 청와대는 “공론화를 거쳐 이미 끝난 일”이라며 일축했다. 시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이번엔 고등학생들이 일어났다. 원자력마이스터고 학생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탈원전 정책을 멈춰달라”는 손편지를 100통 넘게 썼다. 원자력전문가가 돼 나라의 경제발전에 이바지 하고 싶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원자력발전은 우리나라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몇 안 되는 산업의 하나다. 특히 건설과 시운전 능력은 세계가 인정한다. 지난해 체코를 방문한 문제인 대통령인 체코총리에게 “한국은 40년동안 원잔사고 한 건이 없는 나라‘라고 자랑했다.
물론 원자력발전을 정상화한다고 해서 미세먼지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정책과 교통, 실생활 개선 등 복합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이번 미세먼지 습격사태를 지켜 보면서 정부의 탈원전과 미세먼지 대책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주길 바라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미세먼지만 아니다. 당장 실생활의 희생을 부르는 공약의 실천이 급한 게 아니다. 경제는 분위기다. 기가 죽으면 백약이 무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