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불교사원 용화궁의 목조불상은 한 그루로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18m 넘어
국자감의 '과거급제 절반이상 농민 자식'기록 눈길…신분타파는 왕조의 통치술
이른 아침 어제 꾸린 짐을 다시 확인해보다. 8시 좀 넘어 옷을 두둑이 입고 집을 나서다. 이번 겨울들어 가장 춥다는 일기예보에 따라 내복에다 등산용 웃옷 그리고 오리털파커까지 껴입었다. 집에서 가까운 잠실역 부근의 공항행 리무진 버스정류장으로 도보로 이동하여 김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올림픽대로에 차량통행이 드문드문하여 버스는 아무런 정체없이 달려 35분만에 공항에 닿았다.
이번 운남여행에는 오랜 벗 하부열군과 함께 한다.
공항청사에서 서로 만나 커피를 한잔 마시고 출국장으로 들어가 기내에 올랐다.
중국을 다닐 때는 가격이 저렴한 중국 항공사를 주로 이용했고 오늘도 중국항공을 탑승했다. 운남의 성도 쿤밍행 직항이 없어 일단 북경에 도착한 후 쿤밍행 비행편으로 갈아타야 한다. 북경 수도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서울에서 타고 온 비행기에서 짐을 찾아 환승구역으로 이동해 쿤밍으로 짐을 부치고 탑승권을 다시 받았다.
그러나 이어 짙은 안개로 쿤밍에서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되었다는 방송이 나오면서 하염없는 대기가 시작되었다. 오후 3시 10분에 탑승하고 3시 30분에 이륙 예정인 항공기는 4시, 5시가 되어도 마냥 대기 상태다. 거의 6시가 되어서 항공편이 취소되었다는 정보가 스크린에 뜬다.
다음 편 비행편을 확인하여 탑승권을 발급받기 위해 이곳저곳을 좇아다닌 후 결국 이틀 후인 29일 아침 9시 10분발 항공편을 예약하고 다시 항공기에 실은 짐을 찾으러 화물수취대로 이동하다. 짐을 찾으면서 오늘의 해프닝은 일단 완료되었다.
짐을 찾아 택시로 숙소로 이동하다. 공항 고속도로의 통행료 제도가 폐지되었고 오늘의 고단한 하루를 보상해주기라도 하는 듯 택시는 막힘없이 북경시내의 삼환로까지 잘 소통이 되었다. 북경에 오면 주로 묵는 숙소는 북경의 중심거리인 동삼환로의 대외경제무역대학 건너편의 혜교호텔이다. 이 호텔은 전면적인 리모델링으로 숙박료가 230위안에서 300위안으로 올랐다.
값이 오른 만큼 방은 깨끗해 기분이 좀 좋다. 여장을 푼 후 호텔 1층에 있는 중국동포가 경영하는 ‘서울城’이란 식당에서 때늦은 저녁을 하면서 오늘의 긴장을 풀다. 오늘 이후의 여정은 좀 순탄했으면 좋겠는데.... 앞으로 운남의 여정은 순항할 수 있을까? 이렇게 긴 하루가 지나간다.
다음날 호텔 부근의 중국음식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침을 먹다. 죽과 샐러드 그리고 고기와 채소 등으로 만든 소를 넣은 밀가루 전병의 세트메뉴로 24위안이었다. 어차피 오늘 하루는 예정에 없던 북경 시내를 구경해야 한다. 하군과 함께 판자웬 골동품시장으로 가다.
이미 여러 번 이곳을 둘러본 바가 있어 한 시간이면 대략 둘러볼 수 있다. 이어서 간단한 간식을 하고 버스로 왕푸징으로 이동하다.
왕푸징 초입에서 왕푸징 성당까지 걷고 그곳에서 되돌아오면서 모자를 파는 가게와 각종 향료를 파는 가게 그리고 북경의 특산이라 할만한 법랑 공예품인 징타이란을 파는 가게도 둘러보았다.
이어 고궁옆 해자를 지나 장안서가로 발걸음을 옮겨 허핑먼(和平門)까지 걸었다. 지하철 허핑먼역 앞에는 거대한 전취덕 북경오리요리점이 나온다. 5층으로 올라가 반마리의 오리구이와 야채 한접시를 주문해 먹다.
236위안이다. 이어 북경의 티벳불교사원으로 유명한 용허궁으로 가서 절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절 입구에서 가장 끝의 법당에 세워진 한 그루 단목으로 된 거대한 목조불상이었다. 한그루의 나무로 만들어진 목조불상은 그 높이가 지상에 나타난 부분이 18미터 지하에 8미터 전체적으로 26미터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거대한 한 그루의 단목(檀木)으로 불상을 만든 후 이 불상을 보호할 불전을 지었다. 여행객의 눈길을 끄는 것이 또 있다. 현재 티벳불교는 4대 교파로 나뉘는데 그 가운데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교파가 겔룩파로 우리가 흔히 듣는 달라이라마나 판첸라마는 바로 겔룩파 티벳불교의 최고위 승직이다. 이 겔룩파를 창시한 인물이 총캇파대사로 그는 1409년 이 교파를 창시하였고, 겔룩파의 출현은 이후 티벳의 정치 경제 종교 등의 제방면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높이가 6.1미터에 달하는 그의 좌상(坐像)이 이곳 용허궁에 모셔져 있다. 또 청조시기 이 용허궁은 바로 판첸라마 등 티벳불교의 최고위 승려가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북경에 와서 체제할 때 머무는 곳이기도 한 점이다. 용허궁을 참관하고는 부근의 국자감과 공묘를 둘러보았다.
국자감의 자료실에서 본 역대 왕조의 과거급제자의 출신을 분석한 표가 흥미로웠다. 과거급제는 상식적으로 유력한 가문의 자제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쉬우나 분석된 자료에 의하면 거의 절반에 가까운 급제자는 농민( 관료사대부가 아닌)의 자식들로 나타났다.
과거가 나름대로 왕조시기에 무지렁이 백성들의 상층 유동을 위한 메카니즘으로 역할을 한 것을 잘 알 수 있다. 물론 인구비율로 보자면 농민의 비율이 관료사대부에 비해 10배 이상 되는 점을 감안하면 유력가문의 급제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지만 하층 농민의 자제도 응시할 수 있었고 실제 많은 평민의 자손이 과거에 급제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자칫 긴장되기 쉽고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경직한 사회체제에서 그래도 하층민이 상층으로 유동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열어뒀다는 점이 바로 중국 왕조 체제가 수천년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일은 아침 7시쯤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6시경에는 호텔을 나서야 할 것이다. 9시 10분발 항공기가 정상적으로 출발한다면 아마도 12시 넘어 쿤밍에 도착할 것이고 바로 대리나 이장으로 가는 교통편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제 내일부터 본격적인 운남 탐색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