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2:35 (목)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6)‘버블로 고!’㊤日경제의 지뢰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6)‘버블로 고!’㊤日경제의 지뢰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0.01.07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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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20년 다룬 유일한 영화 …1980년대 후반의 '불안한 호황'조명
韓銀총재 "올 2% 성장 미지수"…저성장ㆍ저물가 악령이 日닮음꼴 우려

▶ 지금 한국에도 '잃어버린 20년' 망령이 엄습하고 있는가.▶ 韓 경제 사실상 디플레이션 진입 …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답습하나.▶ "韓,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보다 더 심각한 경제위기 닥칠 수도"▶ 저성장보다 무섭다는 저물가…한국도 `잃어버린 20년` 오나.▶ '日 잃어버린 20년'과 닮은 韓…"분배·성장 균형 필요"▶ 저성장에 저물가까지 덮쳐…일본식 '잃어버린 20년' 오나.▶ 일본 닮아가는 저물가ㆍ고령화, 韓 '잃어버린 20년' 오나.▶ 韓경제, 日 잃어버린 20년보다 심각한 위기?▶ 홍남기 "韓, 일본 잃어버린 20년 전철 밟지 않는 게 중요"

2020년 새해를 맞아 한국에는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하는 분위기다.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두려움이다. 앞에서 열거한 기사 제목들을 보라. '망령' '위기' '두려움' '공포' '무서움' 등 부정적인 단어가 난무한다. 국내 경제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느끼는 데 별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이 같은 두려움이 '요즘 일'이 아니라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부동산 가격이 미친 듯 오르던 2018년 후반부터 이미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중심에는 부동산 버블이 있었던 탓이다.

‘버블로 고!! 타임머신은 드럼 방식(バブルへGo!! タイムマシンはドラム式, 2007)’이라는 영화 제목은 생소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별 거 아니다. ‘드럼형 세탁기로 만들어진 타임머신을 타고 버블 시대로 돌아간다’는 뜻.
'버블로 고!! 타임머신은 드럼 방식(バブルへGo!! タイムマシンはドラム式, 2007)'이라는 영화 제목은 생소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별 거 아니다. '드럼형 세탁기로 만들어진 타임머신을 타고 버블 시대로 돌아간다'는 뜻.

자연스럽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관심이 간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다. 그게 뭘까? 기사 제목에 답이 있다. 핵심 관련어는 '저성장'과 '저물가'. 최근 국내 상황을 보면 왜 일본 얘기를 하는지 알게 된다. 우선 성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월 2일 시무식에서 2019년과 2020년 경제성장률 2% 달성이 "미지수"라며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내놨다.

실업, 고령화, 가계부채 증가, 집값 상승 등으로 내수가 부진한 데에다 세계경제의 성장 둔화로 수출까지 어려운 탓이다. 참고로 2019년 8월 물가 상승률은 –0.04%로 월 기준 처음으로 마이너스 상승률을 보였다. 또한 2019년 수출액은 5424억1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0.3% 줄었다. 수출 감소율이 두 자리 수였던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3.9%를 기록한 뒤 처음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많은 이들이 자꾸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상기하게 되는 것이다. 20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일본은 저성상과 저물가에 시달려 왔다. 물가도 성장도 거의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아예 떨어져 버리는 경험을 했다. 인구 고령화나 부동산 버블 등은 그 배경이나 원인일 것이다. 21세기 들어 한때 일본 경제가 좋아진 적도 있었다. 그때 일본에서는 새로운 경제가 시작되나 하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잠시 뿐이었다. 일어서려 애를 써도 일어설 만 하면 다시 쓰러지던 것이 지난 20년 동안의 일본 경제였다.

2020년 초 일본경제는 여전히 좋지 않다. 올해 있을 도쿄올림픽을 '부흥의 계기'로 삼겠다는 계획이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에 따른 방사능 수치가 문제로 거론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여기에 수구경기가 열릴 다쓰미 국제수영장에서는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이 검출됐고 철인삼종 경기가 치러질 오다이바 야외 수영장은 생활하수의 방류로 악취와 바이러스가 위험 수치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저런 문제로 일본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조차 올림픽이 제대로 치러질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어쩌다 일본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한 때 신뢰와 청결의 대명사였던 일본이 말이다. 어쩌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또 다시 30년으로 확장될지 모른다. 국내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일본의 잃어버린 기간에서 배우자고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일본의 버블 형성과 붕괴, 그리고 그에 따른 저성장ㆍ저물가의 ‘잃어버린 20년’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1985년 미국 뉴욕에서 체결된 플라자 합의였다.
일본의 버블 형성과 붕괴, 그리고 그에 따른 저성장ㆍ저물가의 '잃어버린 20년'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1985년 미국 뉴욕에서 체결된 플라자 합의였다.

본 시리즈 세 번째 글에서 필자는 1980년대 일본의 경제 상황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한 적이 있다. 필립 카우프만 감독의 1993년 작 <떠오르는 태양>이 그것이다. 이 글은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해 왜 세계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요구 사항에서 1985년 일본을 주 타깃으로 하는 플라자 합의를 연상하나라는 주제로 플라자 합의의 전후 사정을 짚어봤다. 일본은 탁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후 세계시장을 이끌며 미국과의 관계에서 압도적 우위에 섰고, 미국은 그 결과로 발생한 무역적자 규모를 축소시키고자 합의를 강요했다는 내용이다.

버블 시기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폭증했다.
버블 시기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폭증했다.

1980년대 후반 일본경제에 들이닥친 버블은 바로 이 플라자합의를 기점으로 삼는다. 합의 결과 엔화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정부는 경기 둔화를 줄이겠다며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렸다. 그러나 이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술력에 바탕을 둔 수출은 크게 줄지 않아 바야흐로 일본은 대내외적으로 전례 없는 엄청난 호황을 겪게 됐던 것이다.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치 상승은 당연한 결과였다. 또한 여기에 미국을 꺾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붙어 일본 경기는 그야말로 흥청망청의 시기를 맞았다. 물론 몇 년 후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지만 말이다.

아쉽게도 이 시기 일본을 그린 영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영화로 역사를 쓰는' 입장에서 바바 야스오(馬場康夫) 감독의 2007년 개봉작 <버블로 고!! 타임머신은 드럼 방식(バブルへGo!! タイムマシンはドラム式)>은 대단히 값진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일본 버블 시기를 그린 거의 유일한 영화일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정식으로 개봉되지 않아 한국 공식 포스터마저 없는 실정이다. 일본에서도, 비록 상업적으로는 크게 실패하지 않았다 해도, 세간의 관심이 크지 않았고 예술적 측면에서도 각광받지 못했다.

영화 개봉에 맞춰 실시됐던 기자회견.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세 명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왼쪽부터 감독 바바 야스오, 히로스에 료코, 아베 히로시, 야쿠시마루 히로코.
영화 개봉에 맞춰 실시됐던 기자회견.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세 명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왼쪽부터 감독 바바 야스오, 히로스에 료코, 아베 히로시, 야쿠시마루 히로코.

그럼에도 이 영화는 몇 가지 이유에서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사 및 영화 측면 모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일단 역사 측면을 보자. 이 영화는, 앞서 말했듯, 일본 버블기를 정면으로 다뤘다. 이 점에서 다른 어느 영화보다 관심을 갖게 된다. 그만큼 경제사 측면에서 일본 버블기를 다룬 영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뿐 아니다. 이 영화를 소개하는 데에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감독이 전달하려는 역사 인식이, 그것이 맞든 틀리든 상관없이, 매우 단순하고 분명하다는 점이다. 나중에 상세하게 다루겠지만 감독은 1990년 3월에 있었던 부동산 대출 규제 정책이 버블을 터뜨리고 그로 인해 일본에 커다란 고통을 가져다 준 절대적인 원인으로 본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면 다른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 여러 측면에서 깊이 생각하고 토론해 볼만한 문제다.

영화 측면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캐스팅이 중요하다. 이 영화 한 편에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여럿을 볼 수 있다. 여배우 히로스에 료코(広末涼子)가 가장 눈에 띈다. 영화 <비밀(1999)>과 <철도원(1999)>으로 그해 신인상을 휩쓸며 일본의 대표 배우에 등극한 그는 이 영화에서 엄마를 찾아 과거로 떠나는 다나카 마유미(田中真弓) 역을 맡았다.

순탄하지 않은 결혼 생활로 구설수에 올랐던 그는 이 영화로 재기를 노렸다고 한다. '일본 최고의 미남배우'로 불리는 모델 출신의 배우 아베 히로시(阿部寛) 역시 '일본의 국민배우' 중 한 명이다. 그는 바람둥이에서 진솔한 남자로 변신하는 시마카와지 이사오(下川路功) 역을 맡았다. 마유미 엄마인 다나카 마리코(田中真理子) 역을 맡은 야쿠시마루 히로코(薬師丸ひろ子) 역시 '일본 대표배우' 호칭을 달고 있다. 이렇게 한 나라의 국민 배우 세 명을 영화 한 편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감독 바바도 "영화의 캐스팅에 가장 만족한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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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이코노텔링 대기자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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