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1 20:27 (화)
'세계경영의 불꽃인생' 김우중 대우 전 회장 별세
'세계경영의 불꽃인생' 김우중 대우 전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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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1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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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83세… 92년에 '우리의 목표는 세계시장' 선언
대우의 의욕적 포석은 IMF때 좌초해 그룹 해체 비운
"언젠간 후세 위해 헌신한 노력 평가할 것"말년 소회

(속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10일 재계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이날 오후 11시50분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어갔다.

김우중 회장(오른쪽)이 옥포 대우조선소 현장을 누비는 모습.  계속 달리지 않으면 넘어지는 자전거 처럼 대우는 쉽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가 쓰러졌다. 사진=뉴스1.
김우중 회장(오른쪽)이 옥포 대우조선소 현장을 누비는 모습. 계속 달리지 않으면 넘어지는 자전거 처럼 대우는 쉽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가 쓰러졌다. 사진=뉴스1.

김 전 회장은 '세계경영 신화'의 몰락으로 지난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20년 만에 자신이 사재를 출연해 세운 아주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됐다.

그간 베트남에서 주로 지내왔던 김 전 회장은 지난해 말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돼 귀국한 뒤 아주대 병원에 통원 진료를 받았지만 올 하반기쯤부터 입원해 치료를 받아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기억력이 서서히 감퇴하는 알츠하이머 증세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으며, 평소 뜻에 따라 연명 치료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1월 중국 베이징에서 김 전 회장의 자서전 '김우중과의 대화: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출판 간담회에 참석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도 "(김 전 회장이) 해외에 가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으며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근황을 밝힌 바 있다.

1936년 대구 출생인 김 전 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우뚝 섰다가 외환위기 이후 부도덕한 경영자로 내몰리는 등 영욕의 세월이 점철됐다. 그가 일군 대우그룹은 한때 현대그룹에 이어 자산규모 기준 2위에 올랐으나 1999년 과다한 부채와 유동성 부족으로 해체됐다.

김 전 회장은 한국전쟁으로 부친이 납북된 이후 서울로 올라와 당시 명문 학교인 경기중과 경기고를 거쳐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까지 섬유회사인 한성실업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김 전 회장은 만 30세인 1967년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대우그룹의 시초인 대우실업은 셔츠와 의류 원단을 수출하며 빠르게 성장했고, 1969년 호주 시드니에 국내 기업 최초로 해외지사를 세웠다. 1970년대 경제성장과 중동 붐, 수출 호조에 따라 급격하게 사세를 확장했고, 특히 당시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으로 단기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며 1972년에는 국내기업 수출 5위를 기록하는 등 파죽지세였다. 1975년에는 종합상사 시대를 열었다.

그룹해체후 김우중은 베트남을 오가며 젊은 창업자들의 육성에 몰두했다. 그는
그룹해체후 김우중은 베트남을 오가며 젊은 창업자들의 육성에 몰두했다. 그는 "미수교국을 뚫고 중앙아시아, 동유럽,아프리카 시장을 열었던 우리의 열정은 결과가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라며 대우의 의지가 꺾인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간혹 피력했다. 사진=뉴스1.

창업한 지 1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1970년대 후반에는 현대그룹과 삼성그룹, LG그룹에 이어 재계 4위로 등극했다. 45세 때인 1981년 대우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급격한 경영 확장을 이뤄냈고, 1990년대에는 해외에 역량을 집중시키며 세계경영을 본격화했다. 이를 통해 그는 대우그룹을 1999년 해체 직전까지 국내에서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2위의 그룹으로 키워냈다. 1998년 대우의 수출액은 186억달러로 당시 우리나라 수출총액 1323억달러중 약 14%나 됐다.

이처럼 승승장구한 그는 샐러리맨들의 우상이 됐다. 1989년 나온 그의 자전적 에세이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러나 이런 공격적인 확장 전략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상황에선 독이 됐다. 모든 기업이 허리띠를 졸라매던 1999년 쌍용자동차를 인수했고, 이는 몰락의 도화선이 됐다. 부채로 외형을 불려나가는 방식이 자금난에 봉착하며 한계에 달했다.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를 겪었고, 당시 GM과의 마지막 협상,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이 모두 실패하면서 대우그룹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당시 41개 계열사와 600여개의 해외법인·지사망을 구축했던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면서 반전을 시도했지만 끝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해체됐다.

그해 10월 중국으로 도피한 김 전 회장은 41조원의 분식회계를 지시하고 이를 통해 10조원 가까운 사기대출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귀국하지 못하고 해외를 떠돌다 2005년 귀국해 항소심에서 징역 8년6개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김 전 회장은 2008년 특별사면을 받았지만 추징금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김 전 회장은 그룹 해체 이후 과거 자신이 시장을 개척했던 베트남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머물며 동남아에서 인재양성 사업인 '글로벌 청년 사업가' 프로그램에 주력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3월22일 열린 '대우창업 51주년' 기념행사였다. 최근에는 김 전 회장이 올해 총 35억1000만원의 지방세를 체납해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한 '고액 체납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은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고 조문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다.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예정됐으며 장지는 충남 태안군 소재 선영이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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