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18:35 (목)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⑮ 신라귀족에 떨어진 복식 규제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⑮ 신라귀족에 떨어진 복식 규제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3.05.23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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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신라 흥덕왕 , 장보고 앞세워 국방과 무역 힘써
삼국 통일 후 계급간 질서 문란, 도덕적 해이와 귀족들의 사치에 칼 빼들어
흥덕왕 복식 금제(興德王 服飾 禁制)반포…진골여인에 에메랄드 빗 불허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경주에 다녀왔다. 수학여행이라고 들떠 재잘거리며 구경하던 경주는 품위 있게 나이든 노인처럼 변해있었다. 이번 여행은 천년 고도(古都)와 어우러져 있는 아름다운 꽃들을 보려고 계획한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봄꽃들은 한꺼번에 피고 사라져 버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꽃구경보다 더 가슴 뛰게 한 여행이었다.

신라 제42대 흥덕왕(재위: 826∼836년) 능 때문이었다. 이 능은 경주시에서 버스가 하루에 다섯 번 다닐 정도로 외진 시골에 있다. 때문에 널리 알려지지도 않아 찾아오는 사람도 적다. 그러나 원성왕 능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능의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꼽힌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해가 막 뜨기 시작할 때의 몽환적인 아름다움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능 주변에 넓게 조성되어 있는 소나무 숲은 많은 사진작가들을 불러들이는 매력적인 명소이기도 하다.

삼국통일 이후 지속된 신라의 태평성대는 문화 발달을 촉진하였다. 사진(통일신라의 유물(왼쪽 아래))=리움 박물관/이코노텔링그래픽팀.

흥덕왕은 형과 함께 조카인 애장왕을 시해하고, 그 형(헌덕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했다. 때문에 사악한 인간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장보고를 앞세워 828년 청해진(전남 완도의 해군·무역 기지)을 세우고, 국방과 무역의 길을 넓혀가는 개혁정치를 폈다. 뜻밖에 흥덕왕은 애처가로도 유명하다. 즉위 첫 해에 정목왕후가 죽자 11년 동안 다른 왕비를 맞지 않았고, 사후에 부인의 무덤에 합장하라는 유언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무덤의 주인공은 2명이다. 게다가 무덤을 지키는 무인석상이 서역인의 모습이라는 점도 특별하다. 당시 서역인과의 교류가 매우 많았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삼국통일 이후 지속된 신라의 태평성대는 문화 발달을 촉진하였다. 하지만 그런 한편에선 도덕이 해이해지고 계급간 질서도 문란해졌다. 귀족들의 사치는 극에 달했다. 흥덕왕은 이를 바로 잡기 위하여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이른바 '흥덕왕 복식 금제(興德王 服飾 禁制)'가 그것이다.

복식에서의 금제는 22항목에 걸쳐 진골대등, 6, 5, 4두품, 그리고 평인의 다섯 단계로 나누고 이를 남녀별로 세분하여, 각 계급의 남녀가 입을 수 있는 옷의 종류, 직물의 재료와 무늬, 장식, 색채, 그리고 직물의 품질 등으로 상세하게 규제하였다. 복식 외에도 금으로 장식한 가옥을 비롯해 그릇, 수레, 말의 장신구까지 포함하고 있다. 무역이 발달하여 페르시아 양탄자, 에메랄드나 튀르키예석 같은 보석과 장신구 등 서역의 진귀한 물건들이 아라비아 상인들을 통해 신라에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복식 규제 중 하나의 예를 들어 이해를 돕고자 한다. 진골 여인이 머리에 쓰느 관(冠) 조항에 '슬슬전(瑟瑟鈿)'을 금하고 있다. 슬슬은 에메랄드이고, 전은 비녀를 뜻하는 한자이므로 에메랄드로 장식하여 관을 고정하기 위해 꽂은 비녀이거나 긴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꽂는 장식 빗으로 추측된다. 통일 신라 후기 유물 중 거북등껍질(대모 玳瑁)에 튀르키예석이나 자개로 장식한 장식용 빗이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슬슬전에 대해서는 진골 여인조차도 금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매우 값비싼 사치품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빈부 격차, 양극화도 극심했다. 한 끼 식사에 50여 가지 반찬을 먹고, 3000명이 넘는 노비를 거느리는 귀족이 있는가 하면 식량이 부족해 절대 다수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렸다. 당시 손순이란 사람이 늙은 어머니가 손자에게 자신의 음식을 먹이는 것을 보고 어머니를 위해 자식을 죽이려고 했던 사건이 벌어져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을 정도였다.

봄꽃 대신 흥덕왕릉에서 1200여년 전의 역사와 조상들의 삶을 더듬어본 경주 여행이 가슴을 더 뛰게 하고, 삶의 이치에 대한 적잖은 깨달음을 주었다. 역사의 오묘한 마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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