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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⑨쌀 집 딸에 연심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⑨쌀 집 딸에 연심
  •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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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5.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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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에 할머니와 귀국한 고모, 그리고 나의 어머니 울산 현대조선소로 초대
그 자리서 정회장이 "아주머니, 사실은 쌀 집에서 일할 때 따님에게 마음 있었다"고백
쌀 배달할 때 일부 빼돌려 종업원끼리 술값에 썼다고도 털어 놓고"몇백 배로 갚을게요"

할머니의 큰 딸, 즉 나의 고모(이문순)는 1917년생으로 정주영 회장보다 두 살 아래였다. 나의 아버지(이금석)는 1919년생으로 정 회장보다 네 살 아래다.

공부를 잘해서 경성사범학교(서울대 사범대 전신)를 다녔던 고모는 후에 치과의사와 결혼했다. 1남 2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던 고 모의 인생은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다 망가졌다. 고모부가 납북된 것이다. 졸지에 과부 아닌 과부가 된 고모는 혼자서 자녀들을 키우며 살았다. 할머니는 똑똑하고, 공부 잘하고, 결혼도 잘한 딸이 자신과 같이 일찍 혼자 됐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했다. 

고모가 친하게 지내던 친구 중 여러 명이 미국 뉴욕에 이민 가서 살고 있었다. 이 중엔 고교 후배인 장택상 씨의 딸도 있었다. 친구들이 고모에게 같이 살자고 권유했는지 어느 날 고모가 혼자 뉴욕으로 가겠다고 했다.

고모가 이민 가던 날, 할머니는 정말 많이 우셨다. 1970년대 후반에 고모가 잠시 귀국한 적이 있었다. 이미 대기업 회장이 된 정주영 회장에게 연락했더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정 회장은 할머니와 고모, 그리고 나의 어머니를 울산에 있는 현대조선소(현 현대중공업)로 초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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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에 준공한 현대조선소는 한국 최초의 조선소로 정 회장이 자랑하는 업적 중 하나였다. 배를 만든 경험도 없고, 신용도 없었으나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고 영국에서 차관을 얻어온 일화는 유명하다. 정 회장은 이 조선소로 할머니와 고모를 초대했다. 사진=현대중공업.

1974년에 준공한 현대조선소는 한국 최초의 조선소로 정 회장이 자랑하는 업적 중 하나였다. 배를 만든 경험도 없고, 신용도 없었으나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고 영국에서 차관을 얻어온 일화는 유명하다. 정 회장은 이 조선소를 할머니와 고모에게 보여주며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고모를 만난 정 회장은 할머니에게 뜻밖의 고백을 했다. "아주머니, 사실은 쌀집에서 일할 때 따님에게 눈독을 들였었어요. 이 집 사위가 돼서 쌀집을 물려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고. 그런데 주인집 따님에다가 워낙 공부를 잘하니까 언감생심 말도 꺼내지 못했어요. 말이나 해볼 걸 그랬나요. 허허허."

당시 경성사범을 다니던 엘리트 고모는 쌀집 종업원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내가 "그래서 할머니는 뭐라고 하셨냐"라고 묻자 할머니는 빙긋이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초한지楚漢志』를 떠올렸다. 흙수저에 한량이던 유방 劉邦의 비범함을 알아채고 자기 딸을 아내로 준 여공呂公이 생각 난 것이다. 만일 할머니가 여공처럼 관상에 뛰어나서 쌀집 점원 정주영을 사위로 삼았더라면 현대그룹 회장이 나의 고모부가 됐을 텐데. 그러나 역사에 '만약에'는 없는 법이다.

한 번 말문이 터진 정 회장이 또 다른 고백을 했다.

"아주머니, 말 나온 김에 또 하나 고백할 게 있습니다. 그때 쌀 한 가마니 배달할 때마다 한 되씩 몰래 빼서 모았어요. 그건 모르셨지요? 그거 팔아서 종업원 모두 술집에 가서 스트레스 왕창 풀었지요. 그때 빼돌린 거 몇십 배, 몇백 배로 갚을게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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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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