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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1930년대 경성의 '주식 투기' 열풍
[김성희의 역사갈피] 1930년대 경성의 '주식 투기' 열풍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05.15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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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적은 투기꾼들은 1~2원씩 들고 와 거액의 투자금 마련해 '주식 도박'에 빠져
중개거래소가 있던 지금의 충무로, 명동 일대 사람 몰려 통행 막히자 청원순사 배치
SG증권 발 주가 폭락 사태와 탈당한 국회의원의 코인 투기 스캔들과 씁쓸한 오버랩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중반엔 전쟁특수에 힘입어 주가가 폭등하면서 투기 열풍이 조선을 휩쓸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투기시장에서 기십만 원, 기백만 원의 자금 없이 큰 성공을 거두려거든 먼저 사람 노릇을 포기해야 한다. 부모 처자를 생이별하고 알몸으로…취인소 문턱을 돌베개로 삼고 여차하면 세상을 떠날 최후의 비통한 장면까지 생각해야 한다…"

이건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경제기자로 활동하던 이건혁이 1936년 잡지 『조광』에 실은 '일확천금은 가능하나?'란 글의 일부다.

그만큼,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중반엔 전쟁특수에 힘입어 주가가 폭등하면서 투기 열풍이 조선을 휩쓸었다. 일제가 증권거래소의 전신이라 할 '조선취인소'를 설립한 것이 1932년.

이미 인천 미두시장에서 인천 객주 안인기와 송창주, 서울의 한진달 등이 한 번의 거래로 수만 원-당시 경성의 고급 주택 한 채 값이 만 원이었다-의 차익을 얻었다는 소문이 돌던 터였다.

급기야 인천에서 활동하던 합백(合百)꾼들이 취인소가 있던 경성 명치정으로 몰려들어 사회문제가 되었다. '하바' 혹은 '절치기'라고도 불린 합백은 자본이 적은 이들이 힘을 합쳐 거액의 투자금을 마련한 후 주가의 등락을 놓고 벌이는 도박이었다. 주식을 하고 싶은데 목돈인 증거금을 마련할 수 없는 투기꾼들은 자연스레 1~2원을 들고 합백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들 합백꾼이 얼마나 몰려들었냐 하면 1937년이면 명치정(지금의 충무로 명동 일대)의 주식 중매점 앞에 수백 명이 떼 지어 서 있는 통에 사람들이 지나다니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일제는 투기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합백꾼을 잡아 구류도 시키고, 취인소 부근에 청원순사도 배치하는 등 조치를 취했지만 합백꾼의 열기를 식힐 수 없었다.

결국 1937년 9월 시내에 있던 본정경찰서 요시카와 서장은 아예 "명치정 일대를 배회하거나 길을 막고 서 있지 말 것"이란 경고문을 명치정 곳곳에 내걸기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주식왕'이 등장했으니 1934년 동아증권주식회사를 설립한 조춘호가 바로 그 사람이다. 1903년 명문거족의 후예로 태어난 그는 경성중학과 일본 주오(中央)대학 법학과를 졸업했을 정도로 영민했기에 오사카와 직통전화를 가설하는 등 수완을 발휘해 회사 설립 첫해부터 명치정 제일의 중매점으로 떠올랐다.

1936년 한 해에만 20만 원(현재 가치 200억 원)의 이득을 보았으며 이후 취인소 전체 매매의 10% 이상이 동아증권을 통하는 등 조선취인소가 해방으로 폐장될 때까지 매매고 수위를 달렸다.

SG증권 발 주가 폭락 사태와 민주당을 탈당한 국회의원의 코인 투기 스캔들로 심란해진 끝에 뒤져본 『럭키경성』(전봉관 지음, 살림)에서 만난 이런 이야기를 보면 '쉽게, 빨리, 많이' 돈을 모으려는 욕심은 자본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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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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