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3:27 (금)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⑭ 염료혁명이 바꾼 세상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⑭ 염료혁명이 바꾼 세상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3.05.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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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18세 화학도가 말라리아 치료제 합성실험 중 인공 보라빛 염료 개발
보라색 좋아했던 佛 나폴레옹 3세 황후와 英 빅토리아 여왕이 유행 이끌어
개발자 퍼킨은 1906년 기사작위 받았고 '퍼킨 메달'은 화학산업계 최고영예

19세기 중엽 유럽은 화학, 전기, 석유 및 철강 분야에서 기술혁신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영국은 이런 변화에 앞장서 1845년 왕립화학대학(Royal College of Chemistry)을 설립하고, 독일 출신 화학자 호프만(August von Hofmann)을 교수로 영입하는 등 과학인재 양성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곳에 윌리엄 헨리 퍼킨(William Henry Perkin)이란 15세 소년이 입학하였다. 그는 비교적 부유한 가정의 막내아들이었다. 당시 화학을 업신여기던 영국 사회 분위기에서 그의 선택은 많은 반대에 부닥쳤지만, 그는 뜻을 꺾지 않고 화학도의 길에 들어섰다. 입학 2년 뒤 퍼킨은 호프만 교수의 조수로 뽑혔다. 그리고 국가 프로젝트인 키니네 합성 작업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 무렵 영국을 비롯한 유럽은 인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식민지를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이들 지역은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곳이었다. 따라서 주둔하는 병사들이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 절실했다. 당시 키니네는 말라리아의 유일한 예방약이자 치료제였다. 하지만 키니네는 남아메리카에 자생하는 키나(kina) 나무에서만 얻을 수 있는데다 과도한 채취로 점점 귀해지고 있어서 매우 비쌌다. 때문에 이를 인공적으로 합성해내는 일은 말라리아 치료제를 값싸게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사업이었다.

호프만은 '콜타르'라는 산업폐기물에서 키니네를 합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연구하고 있었다. 퍼킨도 호프만 교수의 지시에 따라 관련 실험에 매달렸다. 부활절 휴가 동안에도 쉬지 않고 자신의 집 꼭대기 층에 차린 조잡한 실험실에서 실험을 계속할 정도로 열성이었다. 이렇게 노력하던 중 한 실험에서 진한 자(紫)색 용액을 발견하였다. 여기에 비단조각을 담가보니 보라색으로 물드는 것이었다. 이 비단 조각은 뜨거운 물과 비눗물에도 색이 빠지지 않았다. 꺼멓고 끈적끈적한 산업폐기물인 콜타르에서 최초의 합성염료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아직 스물도 안 된, 18세의 퍼킨이 역사적인 성과물을 이뤄낸 순간이었다.

윌리엄 헨리 퍼킨(William Henry Perkin)의 연구로 인해 산업폐기물인 콜타르에서 최초의 합성염료가 만들어졌다. 사진=A History of Chemistry (1918), F. J. Moore/이코노텔링그래픽팀.

당시 모든 염료는 천연물질에서 힘들게 얻어냈으므로 비싼데다 견뢰도(堅牢度=염료, 안료로 염색 또는 착색된 것이 그 후의 가공, 보존, 사용시 받는 외부로부터의 영향에 대한 내성)도 낮아 잘 빠졌다. 퍼킨이 만들어낸 보라색은 고대로부터 귀족과 명예의 상징이었고, 매우 비싸서 서민들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색이었다.

퍼킨은 나이는 어렸지만 그런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곧바로(1856년) 특허를 내고 염색 사업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보라색 염료에 목이 말라있던 때였으나 호프만 교수까지 반대하는 등 어린 퍼킨이 이 사업을 감당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나 피나는 노력으로 이를 극복해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의 성공 뒤에는 두 여인이 있었다. 한 사람은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유제니 황후였다. 유럽 제1의 패션 리더인 그가 보라색을 애용하면서 새삼 퍼플 유행의 물코가 터졌다. 또 한 사람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그는 왕가의 생일 파티나 만국박람회(1862년) 개막식 등 주요 행사에 바로 퍼킨의 보라 염료로 염색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이를 온 유럽 왕실들이 따라하며 보라색 유행이 급물살을 탔다.

마침 유럽에서는 허리는 졸라매고 스커트는 넓게 퍼지는 크리놀린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 넓은 천에 염색을 하려면 더 많은 보라색 염료가 필요하였다. 퍼킨의 보라색은 값까지 싸서 대중들도 이 유행을 즐길 수 있게 하였다. 누구나 값싸게 아름다운 색상들의 옷을 입을 수 있는 미래 시대의 문을 연 것이었다. 그 결과 21세의 젊은 퍼킨은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이렇게 문을 연 합성염료가 19세기 말경에는 약 2000종 등장하였다. 이 화학염료의 첫걸음은 화학은 물론 패션산업, 그리고 의학혁명의 모태가 되기도 하였다. 인류의 역사를 바꿔 놓은 것이다. 사업가로서도 큰 성공을 이룬 퍼킨은 36세에 사업에서 은퇴하고, 다시 화학자로서 연구에 몰두하였다.

일생 동안 그에게 많은 영예가 따랐다. 각종 상은 물론 1906년에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퍼킨 메달까지 제정되어 오늘날 이 메달은 화학 산업계 최고의 영예로 인정받고 있다. 혹자는 퍼킨의 이 화려한 성공이 우연히 얻어진 것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필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고집스럽게 선택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그 길을 달렸으며, 주변의 반대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열매라고 확신한다. 윌리엄 퍼킨이야 말로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더 없이 훌륭한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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