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0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81) 경부고속도 건설 논란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81) 경부고속도 건설 논란 쓰루가 청와대에 들어가고 4개월 뒤, 1967년 4월 대통령 선거 유세 중 박 대통령이 "2차 5개년 계획 기간 동안 대(大)국토 건설계획을 발전시켜 고속도로와 항만 건설 및 4대강 유역의 종합 개발을 추진하겠다. 서울을 중심으로 인천, 강릉, 부산, 목포를 잇는 기간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세 가지 사업 모두 훗날 '부총리 쓰루'와 관련이 있게 된다.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청와대 수석으로 있으면서 그들 국가과제가 어떻게 발상되어 씨앗이 뿌려지고, 어떻게 그 건설의 토대가 마련되었으며, 특히 박통이 그들 사 이코노텔링 독점연재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2022-01-11 09:00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80)정무서 경제수석으로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80)정무서 경제수석으로 재무장관 자리에서 물러나는 쓰루에게 정일권 총리가 다음 일자리로 영국 대사와 청와대 정무수석의 두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영국 대사자리는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러나 경제관료로서는 커리어를 마감하는 것이었다. 청와대 정무수석 자리는 차관급 자리였을 뿐 아니라, 그의 생리에 맞지 않는 '비서' 자리였다.그러나 경제정책을 계속 다룰 수 있는 자리였다. 그는 청와대를 선택했다. 그 선택에는 "그래도 대통령 곁에서 국정의 큰 경험을 쌓는 것이 낫다"는 정 총리의 권유도 작용했다.그전에는 장관을 했던 사람이 청와대 수석으로 들어간 이코노텔링 독점연재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2021-12-28 09:00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79)'최단명 장관' 급전직하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79)'최단명 장관' 급전직하 일본에서 튄 쓰루의 언행은 역금리 시정이니 현금차관 금지니 하며 자신의 코털을 건드려도 꾹 참고 있던 왕초에게 그를 경제팀에서 내칠 좋은 빌미가 되었다. 그의 기세에 눌려 있던 금융계도 불만을 쏟아냈다.왕초와 쓰루가 장차관일 때부터 그들 간의 불화는 대통령도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불화가 경제팀장인 부총리와 재무부 장관 사이의 것이면 그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더구나 당시 한국경제는 겨우 성장세에 속도가 붙어 고도성장의 런웨이를 막 뜨려고 하는 매우 민감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한일경협과 일본 투자자금은 한국 이코노텔링 독점연재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2021-12-14 09:00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678910다음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