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93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90)禍을 부른 '朴통 신임'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90)禍을 부른 '朴통 신임'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거침없이 실천해가면서도 전임 장 부총리와는 달리 대통령이 부여한 권력의 한계를 분명하게 알고 처신하는 쓰루를 더할 나위 없이 신뢰하고 기꺼이 여겼다.그는 그런 박통의 신임을 과시하는 언행을 자주 드러내 보였다. 나중에는 "지금 나는 대한민국 어느 장관이든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어"라고 큰소리를 칠 정도였다.사람들이 그런 안하무인격 언행을 참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어느 장관이 '요새는 이 나라에 대통령이 둘이라는 소문도 있다더라'는 말을 했대요. 이 말이 결국 박 이코노텔링 독점연재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2022-05-17 09:00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89)71년 대선 표차 '95만표'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89)71년 대선 표차 '95만표' 1971년 2월 초에 3차 계획이 확정된 것을 계기로 쓰루는 선거 지원을 위한 행보를 서둘렀다. 부산 같은 항구도시에서는 항만개발계획의 출범을 위한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광주 같은 지방 중심도시에서는 4대강 유역 개발계획을 가지고 정부 합동회의를 여는 등 4월 대선을 앞두고 전국을 돌며 박 정권의 경제적 성과와 향후 경제 발전 홍보에 열을 올렸다.당시 세계 경제, 특히 선진국들은 불황 속의 인플레 현상, 소위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휘말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그런 지지부진한 선진국과는 대조적으로 한국 경제가 이코노텔링 독점연재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2022-05-03 09:00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88) 제동 걸린 '쓰루의 독주'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88) 제동 걸린 '쓰루의 독주' 1971년은 선거의 해였다. 4월 대선과 5월 총선을 앞두고 김학렬은 전국을 돌며 박 정권의 경제적 성과와 향후 경제 발전 홍보에 열을 올렸다. '정치인 쓰루'에 언론은 실망을 표했다생활물가마저 손 밖에서 놀기 시작하면서 그는 점점 초조해져갔다. 그해 11월, 그의 사저 2층 서재에 도둑이 든다.그 사건은 부총리로서 쓰루의 권위에 상당한 손상을 입혔고, 결국 그는 병마로 쓰러지고 만다. 1972년 3월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추진해온 성과물들은 속속 완성되었다. 4개월 뒤 홍릉에 KDI가 개관했 이코노텔링 독점연재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2022-04-19 09:00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678910다음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