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1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44) 3일 만에 '백기' 들고 '반격'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44) 3일 만에 '백기' 들고 '반격' 호기는 좋았으나 당시 노태우 정권과 정면으로 맞서기에는 힘이 없었다.불과 3일 만에 백기를 들었다. 912억 원을 납부하기로 했다. 그러나 완전히 항복한 게 아니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세간에는 정주영의 신당 창당설이 나돌기 시작했다.92년 1월 1일, 정 회장은 새해 차례를 지내기 위해 청운동 집에 모인 가족들에게 정치 참여를 통고했다. 정인영 회장을 비롯한 가족들은 모두 반대했다. 단 한 사람도 찬성하는 사람이 없었다. 기업이나 계속하지 다 늦게 시궁창 같은 정치판에는 왜 뛰어들려고 하느냐고 했다.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만 77세라는 나이를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더구나 자칫하면 그룹에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걱정했다.그때 정 회장이 이렇게 말했다."너희들 재산 때문에 걱정돼서 그러지? 내가 고향에서 정주영 히스토리 |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 2024-01-24 07:00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43)정주영이 분노한 '세금 추징'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43)정주영이 분노한 '세금 추징' 정주영 회장이 직접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바로 80년 현대양행 강탈 사건이었다.이 사건을 겪으면서 정치 권력에 의해 경제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 회장은 후에 "기업을 제대로 하려면 언젠가는 정치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그 첫발은 6남인 정몽준 현대중공업 사장이 떼었다. 88년 4월 총선에서 정몽준 사장은 울산 동구에서 무소속으로 나가서 당선됐다. 정 의원은 당시 자신에게 출마를 포기하라며 정권 차원의 갖은 압박이 있었다고 고백했다.아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정 회장은 무척 좋아했다. TV를 통해 새벽까지 개표 상황을 지켜보다가 당선이 확정되자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했다고 한다. 정치 쪽으로 외연을 넓히려는 원대한 계획에 교두보가 마련된 것이다. 정주영 히스토리 |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 2024-01-17 07:00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42) "1억원만 줘라"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42) "1억원만 줘라" 자동차를 하겠다고 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대우자동차의 지분 50%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몫이었다. 정 회장이 "통합을 하게 되면 제너럴모터스가 가만히 있겠느냐"며 문제를 제기하자 당시 상공부 장관은 제너럴모터스의 양해를 받았고, 결재까지 했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제너럴모터스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현대는 대우자동차를 갖고 오지도 못하면서 현대양행만 한 푼 못 건지고 강탈당한 셈이었다.이 일로 현대양행 창업자인 첫째 동생 정인영 회장은 옥고까지 치렀고, 정주영 회장과 사이도 틀어지게 됐다.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했다. 중공업을 송두리째 뺏긴 정 회장이 새 대통령을 좋아할 리 없었다. 정 회장은 회사 내에서 일체 정치 얘기를 꺼내지 못하도록 했다. 당시 실세인 허화평과 친하다고 자랑 정주영 히스토리 |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 2024-01-10 07:00 처음처음이전이전1234다음다음끝끝